그녀의 오래된 인연으로 살고 있다는 것

by 오 지영




우선 각박한 세상 먹고사는 문제를 핑계 삼아 많은 것을 잊고 살던 나에게 그 시절 기억과 그녀의 이야기를 펼쳐내 준 것에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처음 만났던 게 2007년 2월쯤이었나 아마.



고생하며 삼수를 하고 여느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큰 포부까진 없지만, 그저 점수 맞춰서 가면서도 설렘은 가득했던 학교에서 나는 너희를 만났고 지금도 아른거리는 추억이 많은 시절을 보냈다. 모두가 아직 어렸고, 부족했고 그래서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큼 좋았을 때가 있었나 싶다.


근데 지금의 나는 이런 감정들을 잊고 살았었다. 다들 그렇게 기억 보따리 한 곳에는 있지만 잊고 사는 시절들이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나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잠시나마 그 시절을 떠올려주며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도, 나도, 그 시절 다른 사람들도.


글을 읽기 전 그녀의 지인이라면 웬만하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프다. 그녀의 병명도 그동안의 병력도 자세히는 몰랐다. 단지 그에 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지영이는 아팠고, 대학시절 혹시 불편한 끼가 보이는 것 같으면 걱정되고 염려되는 친구였다는 것 정도. 많이 아꼈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그랬다.


하지만 한동안은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눠 갖기 힘들었으리라. 사실 아직도 그녀에 대해 그녀도 나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진 못한다.

그것이 ‘잘 모른다’라는 개념보다는 어릴 적 우리가 친구가 되던 존재들은 사실 그 시작이 놀이터에서 건네 준 사탕 한 개에서 시작됨을 기억 못 한 채, 어느새 시간이라는 흐름이 주었던 기억과 경험적 교류의 연속이 만든 형제애나 동료애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그 아이는 그런 존재다.

자주 기억하고 살진 못하지만 어느 날 문뜩 하늘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 중 한 명이고, 안녕과 행복을 바라며 옅은 미소를 띠게 만드는 존재들 중 한 명이다.


그렇게 생각날 때면 행복하기를 기도하고, 그날에는 몰랐지만 오늘에서야 알게 된 그녀의 애증의 친구가 더 난리 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끔 연락이라도 되는 날에는 식사 여부와 몸상태가 그렇게 궁금한 그런 사람이다.


오늘은 그런 아이의 고생스러운 시절의 이야기를 엿보았다. 새삼 느낀다. 이 정이라는 건 참 무서운 거다. 아니지.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아이에게는 남다른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대학시절 어렸을 때도 그랬고 그 후 사회에서 종종 만났을 때도 그렇고 참 이상한 아이다. 툭 치면 부러지고 날아갈 것 같은 녀석이 사람 참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는 사실 좋았다. 고생 그득한 얘기였지만 읽는 동안 참 좋았다. 심장에 별로 좋지 않을 때도 있었다. 따뜻하게 잘 가는가 싶더니 중간에 이 녀석이 또 철렁하게 했다가 아주. 결국 중간에 담배도 한 대 펴가며 읽었다. 나도 곧 마흔이다. 심장의 무리는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럼에도 좋았다. 그 아이와 닮은 글이.

담담함과 진심을 담아주었고, 그 와중에 곱고 맑은 문체로 적어주었고, 표현의 묘미보단 들쭉날쭉함 없이 써준 느낌이 좋았다. 개인사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적어주었고, 왠지 모르게 보는 이가 신경 쓸 마음까지 생각하는 투였고, heavy 한 느낌 표현 없이도 나도 모르게 손으로 가슴 한번 쓸어내리게 만들었고, 그렇게 글을 쓰고 있을 그녀가 상상되었고 마지막 챕터를 읽을 때쯤 글들을 읽어 내린 눈을 잠시 감았다.


버팀에 대한 본인의 지론을 피력할 때는 나도 저도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늘도 그렇게 그녀는 나이와 경험과 생각과 차이와 다른 어떤 것들과 상관없이 이 멀리 떨어져서도 삭막한 사무실 안에 나를 반갑고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삶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이제는 꽤 어린 나이부터 알 수도 있겠다. 그녀가 버팀에 대한 의지와 미학을 피력한다면, 내가 그녀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인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듯 비슷한 듯 닮아 있는 말이다.


내가 늘 떠올리는 이 말은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만들어주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으며 난관에 봉착했을 때도 극복과 발전의 의지를 머금고 눈물이 날지언정 함부로 주저앉지 않고 뜬 눈으로 세상과 대상을 마주할 수 있음을 자신하는 말이다.


마치 우리 지영이처럼.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가끔은 지칠 때도 있더라 사람이. 당연한 이치를 아프게 받들지 않는 법도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오늘 그렇게 느꼈듯이 앞으로 이 글을 읽는 누군가 글쓴이를 모른다고 하여도 느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힘든 상황, 어려운 상황이 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버티면 사람을 얻고, 사랑을 줄 수 있고, 행복을 받고,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삶.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세상 속에 나 혼자 고달프지 않음을. 그녀는 그녀의 의지와 에너지로 증명한 삶을 살았고 나는 그녀에게서 그러함을 느꼈다.


오늘도 채팅 속 음성지원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말투에 내 기도가 틀리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그 옛날 꾸밈없고 기분 좋게 들리던 밝은 웃음소리가 유독 생각나는 날이다.

지금은 그 어릴 적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