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그녀가 슬퍼 운 적이 있습니다.
괜찮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가 시큰거려 차마 그 앞에서는 못 울고 혼자서 운 적이 있습니다. 몇 번이었는지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4번 째 글쯤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후배 중 하나로, 아마도 그녀가 복학했을 때 그녀인 줄 모르고 지나친 후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그저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사이일 뿐 대화하려고 만나는 사이까지는 아니었기에, 지나가는 말로 그녀가 아프다는 말만 들어 아는 정도인 그런 사이. 후에 동기들과 친한 그녀를 같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보니 마주보고 대화하려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그리고나서 그 속에 숨어있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쯤부터 저는 그녀가 슬퍼 울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네가 곧 나임을>은 여러 갈래의 감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줄곧 세상이란 공평하게 죽어가는 불공평한 장소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제가 불공평함의 피해를 받고 있는 쪽이라는 마음으로요. 하지만 이 회상에 깊게 몰입해보고 나니 그녀에게 불현 듯 다가온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아픔이란 내가 그동안 상상한 적 없고, 감히 예상할 수 없는 무겁고 무서운,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처럼 심약한 놈에게 그런 고약한 불청객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면? 백 번을 생각해도, 천 번을 생각해도 사람구실은 고사하고 폐인이 되었을 것만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해주는 이에게 피해만 주는 폐인.
반면에 그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그녀를 옆에서 오래 지켜봤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누구든 자연스럽게 동의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경험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며 그녀에 대한 것을 또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버텨냈다고 겸손하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녀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자신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짐을 끌고 언제나 전진해왔습니다. 병명조차 모르고 앓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을 포기하지 않았고, 독한 약이 그녀를 속상하게 할 때도 삶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나빠질지 모르는 상황에도 직업을 찾았고, 병을 핑계로 일을 소홀히 한 적 없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는 것. 가끔은 아픈 신음을 내기도 했지만, 언제나 다시 아침이 찾아오면 씩씩하게 일어나 모닝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끈질긴 강인함이 그녀에게 있음을 모두들 눈치 채 주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이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몇 번씩이나 시큰시큰해졌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살아온 삶을 접하는 첫 감정은 그랬습니다. 요즘 유행한다는 평행 우주에서 평범한 그녀의 삶을 끌어와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렵고 막막한 상황에도 앞을 향하는 굳은 의지를 확인하고 나니 온몸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 앞으로의 걸음에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제 좋아하던 글쓰기에 도전하는 그녀의 세상이 제게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 울린 이 책에 빨리 행복한 일이 가득 쓰여지기를 바라는 애독자가 되어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그 지긋지긋한 동행과 안녕하고 온 마음으로 웃으며 인사해오는 날이 오면 기뻐서 마지막으로 눈물 흘리며 웃는 조연으로 등장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기뻐 웃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