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by 오 지영

내가 쓴 소설 <초록색 무지개>는 엄마와 태몽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소재를 넣은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내 태몽은 멋지니까. 삼 남매 중 언니도 없고, 그 귀한 아들인 동생도 없는 태몽이 이 집에서 나만 있다. 그것도 꽤 근사한 내용으로.


엄마는 연못에서 수염이 달린 물고기를 보고 잉어인가 했다고 했다. 가까이 가려는 찰나 그 이름 모를 물고기가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는, 누가 들어도 아주 멋진 꿈이다. 나는 마침 용띠다. 그래서 어릴 때 이 꿈을 듣고 나는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원래 인생은 막 꿈처럼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TV에 나오거나 아니면 칼럼에서라도 “제 태몽이 그랬대요. 호호호” 적어도 그렇게 말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줄 알 알았는데, 현실은 잘 다니고 있던 회사도 때려치운 백수다.


사실 꿈을 좋아하지도 특별히 믿지도 않는다. 악몽을 꿔도 의미를 찾아보지 않은지 오래됐다. 인생은 그렇게 꿈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예지몽이라 한들 내가 쉽게 피할 수 없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렇기에 꿈은 꾼 그 자리에서 잘 잊는다.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하지만 태몽은 왠지 특별하다. 태어날 아이가 엄마에게 찾아와 ‘내가 여기 있어요’ 하고 알려주는 것이니 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다정한 일인가. 그래서인지 태몽은 몹시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엄마들은 태몽을 아이에게 자주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없다면 영주의 엄마처럼 꾸며서라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아니까 말이다.





사진은, 지난주에 만난 친구의 아가다. 일 년에 한 번쯤 한국에 들어오는데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 친구가 이번에도 애를 먹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지만 조카 둘 이모로써 간접적인 체험을 많이 해서인지, 친구의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돈다. 너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었다. 자꾸 올 때마다 말라진 모습이 집에 돌아올 때 눈에 밟히곤 했다. 너는 네 아이가 가장 소중하겠지만, 나도 물론 네 아이를 예뻐하지만, 그것보다 소중한 건 내 친구라고. 잘 챙겨 먹으라고. 하고 싶었는데 결국 가는 날까지 말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유하의 태몽을 물어봐야겠다. 무슨 꿈을 꿨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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