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조카가 태어났을 때 약속했다. 이모가, 네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줄게. 아무런 조건 없는 애정 말이야. 네가 내게 돌려주지 않아도, 나는 계속해서 줄 수 있는 마르지 않는 독 같은 애정. 아마 그 시기에 나는 그런 애정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허튼짓을 해도 그러려니 바라봐 주고, 내 인생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사람을 갖고 싶었다. 당시 애인이 있었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그것의 의미가 단순한 사랑은 아니었다. 헤어질 수 없는, 남이 될 수 없는, 혹 남처럼 되더라도 그래도 널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인생을 조금 더 영유하기 쉬울 것 같았다.
조카가 태어나고 알았다. 아무런 대가 없는 사랑은 가족이 줄 수 있는 거구나. 나 역시 지나치고, 외면했지만 그런 사랑을 받았겠구나.
많은 이모와 삼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조카를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갈 수 있고, 대신 아프라면 몇 번이고 대신 아플 수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을 두고 조카 때문에 포기할 수 있냐 묻는다면 1초 만에 그렇다 대답할 수 있다. 도대체 조카가 뭐길래.
조카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키가 130cm가 되었고, 어제 앞니를 뺐고, 여전히 존댓말을 쓰고, 레고 박사가 되었고 그제는 이모랑 자겠다고 5살 난 둘째랑 싸웠다.
내 아이가 아닌데 왜 이렇게 예쁜 것일까 생각하다 알았다. 누군가의 인생을 처음부터 지켜본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임을.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태어나자마자 보았다.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손으로 내 새끼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두 발로 걸음마를 시작했다. 앞니 두 개가 났다. 처음으로 망고를 먹고 신나 했다. 장난치다 의자에 머리를 박았다. 내 샤넬 립스틱을 망가뜨렸다. 처음으로 이모라고 불렀다. 같이 공룡 장난감을 골랐다. 유치원에 들어갔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었다. 공원에서 모형 비행기를 날렸다. 같이 딸기를 땄다. 내 얼굴이라며 이상한 외계인을 그려놓았다. 초등학생이 되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지켜보게 될까.
네 인생이 순탄했으면 좋겠다. 사실 사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빛나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찾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궁금한 게 계속 많았으면 좋겠다. 어젯밤 자기 전에 이모한테 털어놓은 비밀 이야기들처럼 앞으로도 계속 내게 비밀을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게 언제나 무조건적인 애정을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