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이 텅 빈 상태. 좋아하던 가게의 라자냐를 먹어도, 마음을 다 보일 수 있는 친구를 만나도, 내게 특별했기에 10번이나 읽은 책을 다시 읽어도, 인생영화를 봐도,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공허라 부른다.
며칠 전 몇 년을 해오던 카페를 접은 친구 역시 공허함이 생겼다 했고, 나 역시 8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정도 지나자 공허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일하며 힘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마냥 좋을 줄 알았다. 아니, 두 달 정도는 좋았던 것 같다. 점심도 먹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월요일을 온전하게 내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비 오는 날 젖는 걱정을 하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동안 쓰고 싶던 글을 쓸 수 있다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반복되자 왜인지 모를 헛헛함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보던 얼굴들, 회사에서 나누던 이야기, 회사에서 먹던 밥, 회사에서의 내 위치가 생각보다 인생의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소속감의 부재라는 것이 내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공허는 찾아왔다. 불행에게는 자리를 내어주며 묻는다 했지만 공허에게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공허가 길어질수록 나의 마음이 지하로 끌려가기 쉽다는 것을 알기에, 일단은 나가서 걷는다. 사실 화가 날 때도 걷는다.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걷는대.라는 친구의 말을 들은 후 부터는 감정이 소란스러우면 무조건 걷는다. 에어팟 두쪽을 귀에 꽂고 그날의 날씨와 변화, 사람들의 움직임,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며 걷는다. 특정 생각이 떠오르면 그냥 생각나는 채로 걷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으면 멍하니 걷는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 이는 내가 평소에도 잘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더욱 열심히 한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목숨까지는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하며. 그날 내가 먹는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평소보다 더 열심히 보고, 아침 커피를 아끼는 원두로 정성스레 내려본다. 선물로 들어온 아껴둔 입욕제를 물에 풀어 몸을 담그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 그렇게 작고 작은 것에 의미부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불완전했던 마음이 조금씩 완전으로 기운다.
공허가 밀려와도 내 마음을 지키며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초조하지 않게, 불안하지 않게, 내게 맞는 보폭으로 걷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