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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Sep 30. 2024

나비처럼 날아서 -26

26.

“안녕하세요? 검사님. 권윤깁니다.”

MBC 블루드래곤즈팀 선수이자 기자였다. 권기자의 설득으로 방송에 출연한 이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권기자는 2개월 뒤에 MBC 주최로 역대 최대 규모의 야구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우승 상금이 1억원이고 결승전은 MBC 생중계로 잠실야구장에서 열린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인이 잠실야구장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도 가슴이 뛰는 일인데 거기다 생중계까지 하다니 진짜 대단하네요. 우승 상금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새로 부임한 장관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회 체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바꾸겠다고 했잖아요. 거기에 동참하는 측면에서 저희 사장이 지시한 것 같더라고요. 검사님 출연했던 뉴스를 사장이 본 것도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후 전인대경팀 감독이 식사자리에서 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선수들은 흥분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희 팀 실력이면 충분히 결승에 오르지 않겠습니까? 마구 같은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도 있잖아요”

MBC는 대회 홍보에 열을 올렸다. 떠들썩한 대회광고와 함께 사회인야구에 대한 기획방송이 이어졌다. 권기자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준혁에 대한 짤막한 기사를 실었다. 너클볼을 던져 화제를 뿌렸던 검사가 대회에 출전하는데 활약이 기대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댓글에서 준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사와 투수라는 어색한 조합에서 오는 신기함이 기대감으로 바뀌어 갔다. 평범한 일반인 투수가 선수출신 타자들을 농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준혁을 통해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다. 



남양주 별내 야구장. 남양주는 서울에서 가깝지만 땅 값이 비싸지 않아 신축 야구장이 늘고 있었다. 고급 재질의 인조 잔디와 쾌적한 덕아웃, 화장실 등을 갖춰 팀들이 많이 몰렸다. 야구장 뒤편 공터에 주차를 끝낸 선글라스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핸드폰이 울렸다. 

“내 놓은 지 두달이나 지났는데 보러 오는 사람도 몇 명 없고. 잘 한다길래 맡겼는데 참.” 남자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가격은 충분히 협의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서둘러주세요.”

답도 듣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는 야구장 쪽으로 향했다. 주중이라 경기가 없어서 야구장은 텅 비었다.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 주위에 그물망이 사방으로 높게 처져 있었다. 남자는 그물망 바로 앞까지 가더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물을 잡고 짧은 한숨을 쉬고 외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벌써 2년이 다 되가는 구나’ 한달 만 있으면 이경수가 은퇴한 지 2년째 되는 셈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잊고 싶은 시간이었다. 보통 주전급 선수가 프로에서 은퇴하면 코치, 스카우트 등 야구단 스탶으로 많이 진출했다. 이경수도 은퇴 후 야구단에 자리를 알아봤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고 오라는 팀은 없었다. 선수로 가장 오래 뛰었던 피닉스 까지도. 

“너 정도면 2군 코치자리는 무난한데 구단에서 이미지 때문에 난색을 표해. 검찰 조사받을 때 언론에서 얼마나 떠들어 댔냐?”

과거 선수들에 대한 무시, 막말과 폭언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었다. 선배 추천으로 성남 모 고등학교 코치에 갈 뻔도 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마찬가지 이유였다. 

야구 지도자 길은 접고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소개한다며 접근하는 지인들이 몰려 들었다. 갖가지 사업을 벌렸으나 실패를 거듭했고 중간중간 사기도 당했다. 

결국 야구 쪽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별내에 신축한 지 1년도 안 된 야구장을 인수했다. 아쉬운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이경수는 경직되고 고압적 자세로 야구장을 운영했다. 참가팀들은 운영에 불만을 터트리며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점차 적자가 쌓이면서 야구장 운영에 대한 애착과 자신감이 줄어 들었다. 하는 수없이 야구장 처분을 결심하고 두 달 전 매물로 내 놓았던 것이었다. 조금 전 전화도 매수인이 잘 안 나타난다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전화였다. 

‘그냥 캐나다로 가 버릴까?’ 캐나다에 이민 간 누나가 틈만 나면 오라고 했다.

“괜히 거기서 혼자 궁색하게 살지 말고 여기로 건너와. 누나 옆에서 같이 살자. 여기 야구 인기 많아. 어린이 야구 캠프 같은 것 열면 애들 많이 몰려 잘될 거야. 내가 다 도와줄 테니 한국생활 정리하고 빨리 와.”

누나 말 대로 이민 갈 생각도 했으나 이대로 가기엔 미련이 너무 컸다. 패잔병처럼 쫓기듯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실패와 내리막길 연속이었던 지난 2년 동안의 시간을 한 번쯤 되돌려 놓고 싶었다. 체념할 것과 극복할 것을 구분 못하고 직진만 하려는 이경수의 고집이었다. 실패했을 때 다른 길로 눈을 돌려 다시 출발할 줄을 몰랐다.  

은퇴 후 벌인 일은 거의 좌절을 겪었지만 야구 실력은 여전했다. 사회인야구 1부 리그 팀을 만들어 선수로 뛰었는데 타율, 타점, 홈런 등 모든 부문에서 월등했다. 4타석 연속으로 홈런을 치기도 했다. 은퇴 후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는 선수들과 달리 이경수는 꾸준하게 운동을 해왔다. 매일 2시간 가까이 헬스, 배팅 훈련을 하며 땀 흘렸다. 습관처럼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MBC 뉴스에서 준혁의 모습을 접한 이경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화면 가득 준혁이 클로즈업됐을 때는 온 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검사가 TV에 나와 보란듯이 야구를 하고 있다니 놀람 그 자체였다. 머리를 불같이 때리는 충격이 가시자 분노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은퇴, 이혼, 사업실패. 이 모든 것을 촉발시킨 자가 준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먹 쥔 손이 떨려왔다. 

‘나는 지 때문에 야구 때려 쳤는데 야구를 한다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투수를? 언젠가 만날 일이 있을 거야 민검사. 그때 한번 보자. 박살을 내줄 테니!”

이경수는 준혁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원한을 구체적인 복수로 전환시켰다. 이를 갈면서.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너클볼 투수 검사 이야기하던데, 혹시 들어 보셨어요? MBC 뉴스에도 나왔 대요.” 중학교 야구부 코치로 있는 후배였다.  

“검사가 투수를 한다고?” 이경수는 뜨끔했지만 속내를 들킬까 봐 조심했다. 

“현직 검사가 사회인야구 1부 리그에서 투수를 하는데 방어율 1위래요. 나가면 이긴다는 데요. 7연승인가 8연승인가 그렇답니다. 1부 리그엔 프로 출신의 잘 치는 타자들도 꽤 있을 텐데 말입니다. 너클볼을 그리 기막히게 잘 던진답니다. 다들 너클볼 검사라 부른다고 하네요. 대단하죠?”

“검사가 야구를 하니 신기해서 그러는 거지. 뭐 있겠어?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호들갑을 떠냐?”

머쓱해진 후배는 화제를 돌렸다. “MBC에서 역대급 규모로 사회인야구대회를 연다는데 아세요? 장난 아니던데요. 우승 상금 1억원에, 잠실야구장에서 결승전을 하고 MBC에서 생중계한대요. 선배도 한번 나가 보세요. 왕년의 이경수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반인들이 하는 대회 아냐? 내가 그런데 나가서 뭐 하려고? 체면 구기게.”

“선배가 지금 뛰는 팀도 일반인이 주축인 사회인 야구팀인데요 뭐. 오랜만에 잠실야구장 잔디도 밟아보고 우승하면 상금도 짭짤하잖아요. 아까 그 너클볼 검사도 대회에 나올 건가 봐요.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언론에서 설레발을 치는 것 같던데.”



양주베이스볼파크 야구장 주위엔 조그만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공장 너머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하나 둘 늘어났다. 예전엔 전부 논밭이었지만 서울이 끝없이 팽창하면서 그 여파가 양주까지 밀려왔다. 

야구장은 투수 마운드 빼고 전부 인조 잔디가 파랗게 깔려 있었다. 관중석도 없고 외야가 넓지는 않았지만 사회인야구 구장 중에서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외야 벽 중간쯤에 화려한 색상의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MBC 주최 제1회 전국 사회인 야구 대회>. 예선을 거친 32개팀이 양주베이스볼파크 야구장에서 준결승전까지 치르는 일정이었다. 결승전에 오른 두 팀만이 잠실에서 우승을 다투게 되어 있었다. 

1루측 덕아웃 앞에서 전인대경팀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외치고 있었다. 방금 끝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16강전에 진출했던 것이었다. 덕아웃에서 짐을 챙기면서도 승리의 여운을 이어가려는 자축의 소리로 시끌벅적 했다. 

“준혁이 너가 나오니까 경기가 이렇게 쉽게 풀리잖아. 예선전에 너 없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감독이 웃으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예선전은 평일 야간에 열렸는데 야근이 많은 준혁은 참가할 수가 없었다.  

“참석 못하는 제 심정은 오죽했겠습니까? 주중에는 빠져나오기가 너무 힘드네요. 16강전부터는 주말 경기라 불참할 일 없을 겁니다. 결승에 진출하면 주중이건 주말이건 검사를 그만두더라도 나올 거니 걱정 마세요.”

전인대경은 수비 집중력과 꾸준한 타격, 준혁의 너클볼이 맹위를 떨쳤다. 파죽지세였다. 16강전을 가볍게 이긴 후 8강전, 4강전 두 게임은 모두 완봉승으로 이겼다. 단 한점도 주지 않고 경기를 지배했다. 

준혁의 너클볼은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며 상대 타자를 윽박질렀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 타자가 휘두른 배트 궤적을 비켜가며 포수 미트에 꽂혔다. 너클볼은 눈이 달린 듯 배트를 피해 다녔다. 전인대경은 준결승전을 가볍게 통과해서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제 잠실야구장으로 갈 준비는 다 되었다. 

다른 조에서는 ‘굿펠라스’팀이 탁월한 경기력으로 치고 올라왔다. 투수진은 평범한 반면 공격 하나는 단연 파괴력이 있었다. 상대팀 투수를 거의 초토화시키다시피 했다. 4강전까지 한 경기당 평균 15점이상의 점수를 뽑아냈다. 굿펠라스는 준결승에서 프로선수 출신 투수가 뛰는 팀과 붙었다. 다양한 변화구가 주무기인 투수였는데 예선전에서 완봉승도 한 차례 거두었다. 변화무상했던 변화구가 굿펠라스 타선 앞에서는 배팅볼에 지나지 않았다. 앞선 타자들이 출루하여 베이스를 채워 놓으면 4번 타자가 홈런, 2루타로 주자를 불러들였다. 상대 선발투수는 3회를 못 넘기고 물러났고 이후 굿펠라스는 타격 잔치를 벌였다. 23대7로 큰 승리를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굿펠라스의 4번 타자는 이경수였다. 

민준혁과 이경수, 마침내 둘은 2년만에 다시 격돌하게 되었다. 판사와 서기, 방청객이 있는 법정 대신 심판과 기록원, 관중이 있는 야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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