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바다로
25.
“어떻게 1부 리그 경기에서 한점도 안 줄 수 있어?”
감독은 이겨 기분이 좋았지만 준혁의 눈부신 활약에 기가 차기까지 했다. 남양주 삼패야구장 1부리그 경기에서 6대0 완봉승을 거두고 난 뒤였다.
“직구도 좋았지만 너클볼은 진짜 최고였어. 구석구석 들어가는 게 마치 제구를 하고 던지는 것 같더라. 메이저리그 투수도 자기가 던진 너클볼이 어디로 날아 갈지 모른다던데.”
포수가 말을 거들었다. 준혁은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레슨을 통해 직구 스피드가 부쩍 늘었다. 빠르게 들어가는 공이 가운데로 몰리지 않으니까 타자들이 정타를 맞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무기는 제구가 되는 너클볼이었다. 사회인야구 투수들 가운데 너클볼을 던질 줄 아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프로에서도 드물었다.
“운 좋게 너클볼이 맘 먹은 대로 잘 들어간 거야.” 준혁은 쑥스러운 듯 겸손의 말로 대꾸했다.
“요즘 매 경기 다 이러니까 운이라고 볼 수 없지. 실력인 거야. 우리 벌써 5연승이야. 이렇게만 가 준다면 올해 우승도 가능할 것 같아.” 감독은 기분 좋은 지 욕심을 드러냈다.
“우승까지는 모르겠지만 4강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것 같은데요. 감독님, 저 오늘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준혁은 장비가방을 둘러메고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경기에 이긴 데다 얼른 집에 가서 딸하고 놀 생각을 하니 웃음만 나왔다. 차안에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딸 하진이는 이 세상에 나온 지 4개월 되었다. 올해 3월 동부지점에서 의정부지검으로 옮긴 후 몇일 뒤에 태어났다. 준혁은 작년 봄에 미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레슨장 앞에서 만난지 11년만에 결혼을 했으니 정말 오래 사귀었던 셈이었다. 통영지청 발령 전후로 1년 정도 헤어지긴 했지만, 둘의 사랑은 뿌리가 깊었고 한결 같았다.
집에 들어가서 씻자마자 거실에서 딸과 놀기 시작했다. 행복한 시간이 이런 거구나 라는 기쁨으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저녁때 핸드폰이 울렸다. 딸을 미나한테 맡기고 핸드폰을 들어 보니 친구 창우였다. 창우는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친한 친구였다. 처음 교회팀에서 야구를 같이 했지만 지금은 팀이 달랐다. 야구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가끔 통화를 하는 편이었다. 친구 특유의 수다스러운 안부 인사가 끝나자 야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오늘 경기도 대단했던데? 어찌 마운드에 오르기만 하면 이기냐? 딸 낳고 나서 그런 것 아냐?”
창우가 게임결과 기록을 봤는지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20대까지만 해도 둘은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심리를 드러내곤 했다. 각자 가는 길이 달라졌고 나이도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가 잘되면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하진이가 태어난 뒤로 성적이 좋아졌어. 신기하네 진짜.”
올해 준혁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남양주 삼패야구장 1부 리그에서 방어율 1위, 탈삼진 1위, 5연승으로 다승 1위를 거뒀다. 피안타율도 1할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투수가 되었다. 한마디로 타자들에게 언터쳐블 투수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너클볼로 재미 본 거야?”
“요즘 너클볼이 잘 들어가 효과를 많이 보고 있어. 오늘은 직구 스피드가 잘 나와 직구와 섞어 던지니까 타이밍을 못 맞추더라. 너가 만든 너클볼 궤적 예측 시스템도 한 몫 했어. 시스템이 예측한 것과 거의 똑 같은 궤적으로 공이 들어가는 게 정말 대단했어. 춤추는 너클볼이 원하는 코스대로 들어가니 타자들이 맞출 수가 없는 거지. AI라 스스로 학습을 해서 그런가? 갈수록 예측 정확도가 좋아지는 거 보면 스스로 진화한다는 게 느껴져.”
“그거 만든다고 나름 고생 많이 했어. 우승하면 한 턱 크게 쏴야 돼. AI가 알아서 진화하는 건 아니고 실험 데이터를 계속 축적해서 그런 거야. 입력된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AI가 스스로 학습을 많이 하게 돼. 그러면 정확한 패턴을 찾아내는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
“5년째 실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날씨가 일정할 때는 괜찮은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거나 돌풍이 불 때는 안 통해. 저번에 경기할 때 갑자기 돌풍이 세게 불었거든. 5분 있다가 그치긴 했는데 그땐 도저히 방법이 없더라. 그 순간은 예측이 안되니까, 너클볼이 생각지도 못한 궤적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되게 당황했어.”
“갑자기 날씨가 바뀌면 예측을 할 수가 없지. 실시간으로 날씨를 측정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그 때는 하늘의 뜻에 맡겨 버리려고 해. 모든 걸 다 통제할 수 있으면 인간이 아니잖아. 하늘에 맡긴다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법도 없고 말이야. 평소에 좋은 일 많이 하면 하나님도 도와 주시겠지.”
“그거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컴퓨터공학 박사 답게 AI 알고리즘을 떠올리며 고민을 하는 듯했다.
“공의 움직임 대신 속도의 변화를 주면 어떨까? 너클볼이 빨라지면 아무래도 기류에 영향을 덜 받을 것 같아. 손가락 끝과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공의 회전을 더 주면 빨라지더라고.”
너클볼에 대한 준혁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너클볼을 연마했지만 효과를 보게 된 것은 불과 1년전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너클볼 구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너클볼이 밋밋하게 들어가 홈런을 맞기도 했다. 가끔 잘 들어가는 너클볼도 거의 볼 판정을 받았다.
2년전 박혜진 사건 재수사를 거치면서 반등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재수사 실패로 인한 좌절과 분노를 자신에 대한 가혹한 담금질로 풀었다. 담금질 도구는 야구였다. 야구장에서는 선수들의 땀과 열정이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어떠한 외압도 작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예전보다 더한 근력운동과 집중력 있는 실전연습, AI 기반 데이터 분석에 매진하였다. 흘리는 땀에 비례해서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다. 점점 기록도 좋아져 어느덧 사회인야구 세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너클볼로만 가볼까? 사인 따로 안 낸다?”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가는 준혁의 어깨를 잡으며 말 했다. 외야 너머 전광판에는 스코어가 LED 조명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3회말까지 블루드래곤즈 대 전인대경 0대5. 준혁은 선발 투수로 나와 한 점도 안 내주고 있었다.
준혁의 소속팀 ‘전인대경’이 연습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다. 블루드래곤즈는 MBC 방송국 직장 야구팀이었다. PD, 기자,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방송국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블루드래곤즈는 2부 리그 상위권 팀으로 아마추어 선수 출신도 꽤 있었다.
경기는 전인대경의 일방적 리드로 진행되었다. 준혁의 투구에 타자들은 공을 맞추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직구는 묵직하고 빠르게 들어갔고 종종 들어가는 너클볼은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상대 타자들은 나풀거리며 들어오는 너클볼에 고개를 갸웃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준혁은 상대 타자를 농락하듯 자유자재로 공을 꽂아 넣었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상대팀은 준혁이 넘을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4회초, 준혁은 마운드에 올라 상대팀 상위 타선을 맞이했다. 덕아웃에서 확인한 너클볼 궤적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를 떠 올렸다. 습도가 낮고 약한 동풍으로 공이 왼쪽으로 5도 휘면서 하강기류를 탄다고 나왔다. 공이 타자 바깥쪽으로 흐르게 실밥 각도를 주지 않고 너클볼을 던졌다. 하강기류를 감안해 높은 곳에서 공이 떨어지도록 손에서 일찍 공을 놓았다.
공은 마주치는 공기 저항과 밑에서 당기는 중력의 힘을 밀치며 앞으로 날아갔다. 높게 날아가다 타자 앞에서 공은 갑자기 돌변했다. 바깥으로 빠지다가 하강기류를 타면서 춤을 추듯 급격히 밑으로 떨어졌다. 높이 가던 공이 타자 앞에서 활공 비행하듯 뚝 떨어지며 스트라이크존에 걸쳤다. 타자는 높은 줄 알고 바라만 보았고 심판은 “스트라잌!”을 외쳤다. 타자는 TV에서만 보던 너클볼을 바로 앞에서 경험한 것이 마냥 신기한 듯했다.
다음 공도 너클볼이었다.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하고 거리가 멀었다. 투 스트라이크. 세번째 던진 공도 너클볼이었고 타자는 서서 바라만 보았다. 가운데로 오던 공이 타자 앞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꾸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갔다. 삼진 아웃. 다음 타자는 투수 앞 땅볼로 아웃, 마지막 타자는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상대팀 4회초 공격도 맥없이 끝났고 수비를 끝낸 전인대경 선수들은 덕아웃으로 향했다.
“민검사, 오늘 볼 진짜 좋아. 마구다 마구야.” 전인대경 3루수가 준혁에게 엄지척을 했다.
‘검사? 저 투수가 현직 검사라고?’ 삼진을 당하고 들어가던 상대팀 선수가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후 블루드래곤즈는 6회초 공격에서 볼넷, 실책, 안타 2개로 1점을 얻었다. 최종 스코어 8대1로 전인대경이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상대팀 선수 한 명이 준혁을 찾아왔다. 검사라고 들었는데 진짜 검사냐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
“공이 너무 좋아 선수 출신인 줄 알았습니다. 현직 검사라 하니 믿기질 않네요.”
“선수 출신은 아니예요. 검사는 야구 잘하면 안 되나요? 하하.”
“보통 알고 있는 검사의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 보니 그렇습니다. 사회인야구에서 귀신같이 너클볼을 잘 던지는 투수가 현직 검사다?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 날 것 같은데요.”
상대는 MBC 스포츠국 기자라 했으며 대화를 더 나눈 후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기자와 몇 번의 통화 후에 MBC 방송국에서 전인대경팀 경기를 촬영했다. MBC 8시 뉴스 말미에 준혁은 방송을 탔다. 현직 검사가 투수를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였다. 선수 출신도 아니면서 너클볼로 사회인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고 나왔다. MBC 뉴스 인터넷 기사에는 댓글이 쏟아졌다. 이어 다른 일간지에도 기획 기사가 나갔다. 기사 중간에 프로야구 해설자의 언급이 눈에 띄었다.
<”일반인이 저렇게 자유자재로 너클볼을 구사한다는 게 놀라운데요. 프로에서도 너클볼을 제대로 던지는 국내 투수는 거의 없거든요. 선수출신도 아닌데 대단합니다. 아마 엄청난 노력을 했을 거예요. 검사만 아니라면 프로야구에 도전해라고 권할 텐데 아쉽네요. 아무튼 사회인야구에서는 독보적인 투수가 될 것 같습니다.”>
준혁은 너클볼을 던지는 검사 투수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되었고, 졸지에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한동안 언론사의 취재 요청, 지인의 전화로 일을 못 볼 지경이었다. 심지어 모 프로야구단에서 입단 테스트 의향이 있냐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검사장도 준혁을 따로 불러 격려했고 검찰 직원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