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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이 열리는 잠실야구장 하늘에는 선명한 흰구름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10월말이라 아침엔 쌀쌀했지만 오후엔 햇살이 따스해서 운동하기 좋았다. 2시부터 경기 시작이었지만 오전부터 관중이 몰리기 시작했다.
경기 몇일 전부터 현직 검사와 프로야구 홈런타자가 맞붙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질적 환경에 있는 두 사람 간의 대결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MBC 뉴스에서 검사와 스포츠 스타의 이색 대결이라는 내용으로 이슈 몰이를 했다.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야구 팬뿐만아니라 일반인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MBC 홈페이지는 야구장을 개방하라는 댓글로 뒤덮였다. 결국 야구장을 무료 개방하기로 했다.
“완전 대박입니다. 본부장님. 경기 시작 1시간 전인데도 내야 좌석은 다 찼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만원 관중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시청률도 최소 두 자리 수는 나오지 싶습니다.”
스포츠2국 PD의 흥분한 목소리가 잠실야구장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경기는 전인대경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1번 타자가 볼넷으로 나가 도루를 했지만 후속 타자의 땅볼, 플라이 아웃 2개로 점수를 내지 못했다. 1회말 굿펠라스 공격이 시작되었다. 전인대경 선발 투수는 준혁이었고,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너클볼 위주로 컷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등을 골고루 던져가며 타자를 유린했다. 마음먹은 대로 공이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가 쉽게 승부를 할 수 있었다. 유격수 앞 땅볼, 투수 앞 땅볼, 삼진으로 1회 상대공격을 가볍게 끝내 버렸다.
2회초 공격에서 전인대경은 볼넷, 도루와 안타 2개, 희생 플라이를 묶어 2점을 앞서기 시작했다. 2회말 굿펠라스 공격은 4번타자부터 시작되었다. 이경수가 배트를 가볍게 돌리며 타자 박스로 들어왔다. 체격부터 다른 선수와 확연히 달랐다. 타이트한 바지가 근육으로 터질 듯했고 배나 허리도 군살없이 탄탄하였다. 준혁은 이경수와 눈이 마주쳤으나 뒤돌아 투수판 뒤에 있는 로진백을 집어 들었다. ‘2년전에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지만 오늘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걸’ 준혁은 거친 날숨을 쉬며 투수판 위에 발을 올렸다.
이경수는 타자 박스에 서서 배트를 홈 플레이트에 툭툭 쳤다. ‘법정에서나 놀지 야구판에는 왜 나타났냐? 너클볼 전문이라고? 건방지게. 아마추어 주제에. 프로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마.’
이를 악물고 준혁을 노려보며 타격자세를 취했다. 준혁은 왼발을 들었다 내림과 동시에 공을 뒤로 빼서 반원을 그리며 앞으로 당겼다. 왼발을 길게 빼서 포수 쪽을 향해 착지하고 공을 쥔 손을 어깨 앞쪽까지 끌어가서 공을 뿌렸다. 반동으로 오른발은 뒤에서 옆으로 돌아 나와 돌려차기 하듯 역동적인 자세가 나왔다. 예상을 깨고 빠르고 강하게 날아가는 직구였다. 공은 펜싱 검처럼 타자 무릎 안쪽을 찔러 들어갔다.
“스뜨~라잌!”
너클볼을 예상했으나 직구가 몸 쪽으로 빠르게 들어오자 배트를 내지 못했다. 움찔하며 들어오는 공을 쳐다보기만 했다. 3만명에 가까운 관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마치 관중 전체를 이끄는 응원단장이 있는 듯 관중들의 함성은 짧고 동시적이었다.
숨을 고른 준혁은 두번째 공을 이경수에게 날려 보냈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날아가던 공이 이경수 앞에서 나비로 변했다. 10월에 나비라니 팔랑, 나비로 변한 공이 날개 짓을 하자 공은 밑으로 훅 떨어졌다.
배트는 공이 사라진 허공을 갈랐다. 준혁은 너클볼을 던졌고 이경수는 헛스윙을 했다. 투 스크라이크 노 볼. 이경수는 변화무상한 너클볼의 위력에 심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동안 준혁에게 당했던 사회인 야구선수의 반응과 다름 없었다.
‘이거 뭐지? 너클볼을 조종하는 것도 아니고.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오다 배트를 내밀자 미끄러지듯 뚝 떨어지냐?’
3구가 힘있게 날아갔다. 몸 쪽 직구였고 이경수가 쳤으나 파울이었다. 4구는 너클볼이었으나 스트라이크 존에서 밖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다음 공도 바깥으로 흐르는 너클볼이어서 배트를 내지 않았다. 바깥으로 완전히 빠지기 직전에 공은 움찔하듯 멈추는 가 싶더니 순간 방향을 바꿨다. 포수 미트 정 중앙으로 흘러 들어갔다. 스트라이크로 삼진 아웃.
이경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관중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며 함성과 함께 준혁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이경수의 편이 되어주는 관중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거 팬이었을 사람도 있을 텐데 삼진을 당하자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이경수는 관중들의 환호에 어쩔 줄 몰랐고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기다려주는 팬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3회에 전인대경은 다시 1점을 얻었다. 굿펠라스도 준혁의 제구가 흔들린 틈을 타서 볼넷 2개와 안타로 1점을 따라붙었다.
4회 초 전인대경은 무득점에 그쳤다. 이어진 4회 말 굿펠라스 공격에서 원 아웃 후 이경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슬라이더로 볼, 2구는 너클볼을 던졌으나 아깝게 볼이 되었다. 3구는 직구가 높이 날아갔다. 어깨 높이로 날아갔으나 이경수는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아~~” 하는 관중들의 탄식과 함께 공은 멀리멀리 날아갔으나 파울 폴대를 비껴갔다. 대형 파울 홈런이었다.
‘휴, 높았는데 그걸 저리 넘겨 버리냐? 홈런타자 답네.’
준혁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공을 쥐었다. 너클볼이 바깥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아래로 흔들렸다 다시 오른쪽으로 꺾여 들어갔다. 이경수는 밖으로 빠지는 줄 알고 배트를 내지 않았다. 마지막에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며 포수 미트로 들어갔다. 마치 포수 미트가 블랙홀처럼 공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다음 공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가다가 바깥쪽으로 훅 빠지는 볼이었으나 헛스윙을 했다. 이경수는 준혁의 너클볼 궤적에 전혀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경수는 2타석 연속 삼진아웃을 당했다. 5번 타자가 볼넷으로 나갔으나 다음 타자가 2루수 앞 땅볼로 아웃 되었다. 3대1로 전인대경이 앞선 채 4회말이 끝났다.
5회초 전인대경은 안타 2개와 도루를 묶어 1점을 얻었다. 굿펠라스는 안타, 볼넷, 상대 실책으로 만루기회를 맞았으나 후속타 불발로 점수를 얻지 못했다. 4대1로 끌려가던 굿펠라스는 5회가 끝날 때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중심타자인 이경수가 전혀 역할을 못해주니 팀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6회초 전인대경은 점수를 내지 못했고, 이어지는 굿펠라스의 공격은 상위 타순부터 시작되었다.
굿펠라스 3번 타자는 가볍게 툭 끊어 쳐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1루로 진출했다. 너클볼이 밋밋하게 가운데로 밀려 들어왔고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경수 앞에 주자가 나가자 굿펠라스 덕 아웃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이경수는 얼굴 근육이 살짝 떨리며 비장한 표정을 짓고 타자 박스에 들어섰다.
1구 너클볼 스트라이크, 2구 슬라이더 볼, 3구 너클볼을 던졌지만 볼이었다. 심판이 볼 판정을 외칠 때마다 굿펠라스 선수들은 함성을 질렀다. 제구가 안 좋았던 게 아니라 이경수가 공을 끝까지 보며 볼을 잘 골라냈다. 4번째 공이 날아 들었고 너클볼이었다. 이경수의 배트는 날아오는 너클볼을 향해 날카롭게 돌아 나갔다.
“깡” 소리와 함께 공이 배트에 맞았고, 준혁은 급히 앞으로 달려 나왔다. 공은 빗맞아서 멀리 가지 못하고 투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준혁은 공을 잡아 몸을 180도 돌려 2루쪽으로 공을 던졌다. 2루수는 공을 잡고 베이스를 발로 찍고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심판이 손을 크게 올리며 아웃을 선언했다. 더블 아웃. 이경수는 병살타를 쳐서 선행 주자까지 죽게 만들었다. 달아올랐던 굿펠라스 덕아웃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다음 타자는 유격수 앞 땅볼이었지만 유격수가 던진 공을 1루수가 포구를 하지 못했다. 1루수 실책이었다. 준혁은 힘이 빠졌는지 다음 타자를 볼넷으로 내줬다. 2사에 주자 1,2루. 포수가 타임을 요청해 투수 마운드로 걸어왔다.
“그냥 편안하게 던져. 홈런 맞아도 동점이야. 잠실야구장 담장을 넘길 수 있는 사회인야구선수는 없어. 알았지?”
호흡을 가다듬은 준혁은 7번 타자를 맞이해서 가볍게 공을 뿌렸다. 배트가 나왔지만 너클볼에 공 위부분을 맞춰 3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이었다. 아쉽게도 굿펠라스는 점수를 못 냈다.
7,8회는 소강상태로 양팀은 득점이 없었고 마지막 회인 9회로 접어 들었다. 전인대경 첫 타자는 상대 실책으로 나갔으나, 후속 타자들의 안타가 터지지 않아 득점없이 끝났다. 4대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굿펠라스의 마지막 공격 기회만 남았다.
하위 타순인 8번부터 시작되었다. 8번 타자는 준혁의 초구 슬라이더에 1루수 앞 땅볼로 아웃 되었다. 다음 타자는 볼넷으로 1루로 출루했으나 후속 1번 타자가 1루수 플라이아웃으로 물러났다. 2번 타자가 타자 박스에 들어섰으나 굿펠라스 덕아웃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투 아웃에 주자 1루 상황이 역전으로 가기에는 힘들다고 느낀 듯했다.
이경수는 덕아웃 중간쯤 앉아 건너편 3루측 상대팀 덕아웃을 응시했다. 순간, 기시감이 생기며 잊고 싶었던 과거 기억이 떠 올랐다. 누군가 녹화한 영상을 재생한 듯 11년전 3루 덕아웃 모습이 펼쳐졌다.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나무 벤치, 달빛만이 벤치위를 옅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