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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Oct 03. 2024

나비처럼 날아서 -29

29.

9회말 투 아웃, 주자 1루. 마지막 타자일지 모르는 굿펠라스의 2번 타자가 들어섰다. 힘껏 배트를 휘둘렀으나 빗맞아 3루수 쪽으로 향하는 땅볼이었다. 공은 힘없이 데굴데굴 굴러가 3루수가 잽싸게 달려 나와 잡아 던졌으나 1루에서 세이프 되었다. 행운의 내야 안타였다. 2사 1,2루. 굿펠라스 덕아웃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경수 타석까지 가면 역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3번 타자는 준혁의 너클볼을 힘껏 쳤으나 유격수 정면으로 가는 땅볼이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유격수 앞 땅볼로 기록되는가 했더니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더듬는 바람에 주자는 모두 세이프 되었다. 

평범한 타구였으나 유격수가 긴장을 했다. 이렇게 큰 경기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다는 것이 간단치가 않았다. 만원 관중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사회인 야구선수가 극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느새 2사 만루가 되었다. 굿펠라스 덕아웃에서 지르는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준혁은 잠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먹구름이 자리를 잡아 어둑해졌다. 잠실운동장 곳곳에 습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준혁은 너클볼 투구 예측 시스템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 정도 습도에서 공이 어떻게 상승기류를 탈 지 기억과 경험을 끄집어 냈다. 5년여 동안 실험 데이터를 축적하고 AI 알고리즘을 돌려본 결과였다. 곧 이경수가 타석에 들어설 거지만 긴장되지 않았다. 너클볼은 충분히 통제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감이 더했다.

마지막회 마지막 공격. 4대1에 2사 만루. 프로야구 홈런왕 출신 타자가 들어섰다. 홈런 한방이면 끝내기 만루 홈런이었다. 투수는 선수 경력이 전무한 현직 검사였다. 관중들도, 시청자들도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준혁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경수가 넘어야 할 인생의 고비라면 준혁은 나약하지만 인생의 주인공인 나였다. 사람들 자신이었다. 절대 무너져서는 안 되는 꿈이었다. 피하지 말고 반드시 이겨 희망을 보여 달라는 심정으로 준혁을 응원했다. 

모든 베이스에 주자가 들어 차 운동장이 좁아 보였다. 큰 체격의 이경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몰입감이 최고조로 달했다. 관중들은 잠시 웅성거리다 침묵으로 돌변하며 이 승부의 조연으로 역할을 했다. 잠실야구장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터지기 직전 풍선 같았다. 이제 둘 중에 하나만 승리하게 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준혁은 담담하게 1구를 던졌다. 너클볼이었다. 이경수는 배트를 돌렸지만 공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헛스윙으로 원 스트라이크. 2구가 손에서 빠지는 순간 준혁은 속으로 ‘아’ 하는 탄식을 했다. 실투였다. 너클볼이 빠르게 밀려 나갔기 때문에 기류나 바람의 영향을 덜 받았다. 한마디로 치기 좋은 느린 직구나 다를 바 없었다. 

“깡!” 경쾌한 배트소리와 함께 공이 빠르게 왼쪽 높이 뻗어 올라갔다. 홈런과 비슷한 궤적의 포물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굿펠라스 선수들은 덕아웃 밖으로 뛰쳐나와 공의 궤적을 쫓아 갔다. 두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지를 기세였다. 

타구가 운동장 중앙을 넘어 가면서 조금씩 왼쪽으로 휘기 시작했다. 파울 폴대 근처에 이르러 힘이 떨어졌는지 밑으로 당기는 중력의 영향권으로 들어왔다. 완만한 하강 포물선을 그리던 공이 밑으로 뚝 꺾이며 왼쪽으로 급격히 휘어졌다. 파울이었다. 경기 두번째 파울 홈런이었다. 이경수는 1루 베이스 근처까지 갔다가 허탈해 하며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굿펠라스 선수들도 혀를 차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3구는 빠른 컷패스트볼을 던졌으나 이경수가 피할 정도로 안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4구는 너클볼, 5구는 커브를 던졌으나 모두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이제 공 하나에 승부가 갈리게 되었다. 전인대경 감독이 작전 타임 요청을 했다.

“그냥 볼넷으로 거르는 게 어때? 볼넷을 주더라도 1점이야. 이경수 피하고 다음 타자와 편하게 승부하자. 다음 타자는 오늘 안타 하나도 못 쳤어. 쉽게 가자.” 감독의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감독님. 정면 승부로 가면 안 될까요?”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해왔고 이성적인 판단을 보여왔던 준혁의 반발에 감독은 당황했다. 이경수와 얽힌 관계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안타는 없었지만 그래도 프로야구 홈런왕 출신이야. 파울이지만 담장을 두번이나 넘겼어. 여기서 큰 거 한방이면 경기 끝날 수도 있어. 눈감고 이경수 거르자. 거르고 다음 타자 삼진으로 잡아 버려. 굳이 무리할 필요 없잖아.”

“파울 홈런은 제가 실투해서 그런 거고요. 저 믿고 그냥 부딪쳐 보시죠.”

“가까이서 보니 이경수 배트 스피드 장난 아니더라. 걸리면 바로 홈런이야. 감독님 말 대로 그냥 거르자. 우리 우승해야지.” 포수도 감독 편을 들었다. 

“그러면 유인구로 승부하는 건 어때? 스트라이크 던지지 말고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을 던져. 너클볼이 됐든 슬라이더가 됐든. 배트를 내밀어 헛스윙하면 좋고, 아니면 볼넷으로 내보내는 거고. 알았지?”

TV에서는 급상승하고 있을 시청률을 의식한 캐스터와 해설자가 한껏 긴장을 고조시켰다. 

“볼넷으로 이경수 선수 걸러 보내자는 이야기겠죠?”

“이경수 선수 오늘 파울 홈런 두개나 쳤어요.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호크스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던 선수 아니겠습니까? 신인왕에 홈런왕 출신이기도 하고요. 투수가 아무리 너클볼을 잘 던진다고 하나 아마추어 선수거든요. 정면승부는 무모해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프로야구 선수출신 해설자는 지금의 승부 자체가 못마땅한 듯했다. 사회인야구 투수가 어디서 감히 홈런왕 출신에게 정면 승부를 하느냐는 투였다. 감독, 포수는 각자 자리로 돌아갔고 준혁은 다시 투수 마운드에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던질 공의 그립을 되뇌며 로진백을 잡아서 손에 묻히고는 돌아섰다. 

베이스에 꽉 들어찬 주자, 수비수, 양 팀 덕아웃, 관중석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준혁의 동선을 따라다녔다. 포수는 바깥 쪽으로 많이 빠져 앉고는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글러브안에서 공의 그립을 쥐었다. 왼쪽 다리를 가슴 쪽으로 크게 차 올리며 투구를 시작했다. 이경수와 마지막 승부를 가리는 공이 준혁의 손에서 벗어나 포수 쪽으로 향했다. 

포수가 사인을 냈던 슬라이더도,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도 아니었다. 공은 너클볼 궤적을 그리며 홈 플레이트 정 중앙으로 향했다. 너클볼 특유의 무회전 공이 날아오자 이경수의 손은 힘이 들어갔다. 예상했던 공이 예상했던 궤적으로 날아왔다. 

공은 타자 앞에서 바깥쪽으로 휘며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경수는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걷어 올리려고 타이밍을 맞췄다. 짧은 동선으로 어깨에서 빠져나온 배트는 빠르고 날카롭게 돌았다. 배트는 출렁이며 밑으로 떨어지는 너클볼 궤적을 따라잡았다. 이제 배트 중심에 공이 쫙 달라붙어 반발력으로 하늘 높이 날아가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배트를 쥔 손에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 너클볼이 밑으로 떨어지긴 했으나, 배트 바로 앞에서 순간 위로 출렁 솟아올랐다. 짙은 먹구름, 높아진 습도로 강한 상승기류가 형성되어 있었다. 준혁은 이를 감안해 던졌고, 공이 떨어지다 상승기류를 타고 순간 솟구쳐 올랐던 것이었다. 타자 앞에서 마구처럼 두번의 나비 날갯짓을 하며 포수 미트로 향했다. 짜릿한 손맛이 전달되는 대신 공기를 가르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부~웅”

헛스윙 삼진이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이경수는 바닥으로 배트를 집어 던졌고, 준혁은 기쁨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준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올랐다. 어제 인생 최고의 경기를 했지만 그 대가로 몸은 엉망이 되었다. 3시간 가까이 극도의 긴장감으로 집중을 한 탓에 1%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완전 방전 상태였다. 쉬고 싶었지만 사무실 가서 남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밀린 일이 남은 상태에서 월요일 새로운 한 주를 맞기는 싫었다.

의정부지검으로 가는 동부간선도로는 막혔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경수와 펼쳤던 마지막 승부 장면이 떠 올랐다. 너클볼이 이중으로 날갯짓하며 들어가고 헛스윙하면서 경기 종료. 미소가 절로 나왔고 너무 통쾌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경수의 무릎을 꿇렸다는 것이 기뻤다. 기쁨에 비례해서 유죄 선고를 받아내지 못한 아쉬움도 더 커졌다. 이경수가 죄값을 치루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조서 검토하느라 오전은 금방 가버렸다. 늦은 점심 후 커피를 마시는 데 핸드폰이 울렸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검사님. 주미혜라고 하는데 기억나세요?”

주미혜. 낯익은 이름인데. “박혜진씨 친구 맞으시죠? 2년전에 교대 앞 카페에서 뵈었던.”

어제 경기 이겨줘서 고맙다고, 마지막 삼진 잡을 땐 정말 후련했다고 했다. 검사로 바쁠텐데 언제 야구까지 하게 됐냐고, 이제부터 팬이 되었다고 기뻐했다. 이야기 도중 박혜진 사건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었다.

“그때 끝까지 못 가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검사님도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안되는 걸 어떡합니까? 혜진이도 하늘에서 어제 경기보고 기뻐했을 거예요. 지금 혜진이 보러 갈려고 합니다. 본지 오래됐고 해서요.”

양주 추모공원이라고 했고, 잘 다녀오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준혁은 문득 박혜진에게 인사를 올리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담당검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박혜진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미혜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가고 싶다고, 추모공원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추모공원은 야외 납골당으로 나선형으로 돌면서 유골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길게 안으로 들어가자 왼쪽에 박혜진 이름이 붙은 대리석 벽 문이 보였다. 봉인된 벽 문안에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었고, 앞에는 화사한 미소의 박혜진 사진액자가 붙어 있었다.

액자 귀퉁이에 빛 바랜 스냅사진 한 장이 끼여져 있었다. 놀이공원 벤치인 듯한 곳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세명의 남녀가 웃고 있었다. 준혁은 유골함 벽에 가까이 다가가 사진 속 인물을 자세히 보았다. 

“어!”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사진 속 가운데에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오래전 모습이지만 준혁이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충격 그 자체였고,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황당하기까지 했다.

“왜 그러세요? 오래 전 사진이라 지금이랑 많이 다르죠? 얘가 혜진이고 전 오른쪽에 있고요. 가운데는 야구부 친굽니다. 기복이라고. 경수 포함해서 네 명이 친했는데 졸업하면서 경수는 멀어졌죠. 그 뒤로는 주로 세명이서 어울렸어요.” 

“이름이 기복, 이라고요?” 준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홍기복. 예전 고등학교 코치 관두면서 개명했어요. 홍인기라고 했나? 전 아직 기복이란 이름이 익숙해서. 기복이가 한때 혜진이를 짝사랑하기도 했죠. 다 지나간 추억이지만.”

스릴러 영화의 마지막 반전 장면을 볼 때처럼 소름이 돋았다. 홍코치가 박혜진, 이경수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충격인데 박혜진을 사랑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준혁은 2년전 재수사 시점으로 돌아가, 홍코치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 기억을 짜냈다. 재수사 출발에서부터 목격자 탐문, 언론 노출 등 과정 과정마다 홍코치가 있었다. ‘설마’하는 극단적인 추정이 꼬리를 물며 머리속을 맴돌았다. ‘왜 홍코치가 박혜진, 이경수와의 관계를 숨겼을까? 홍코치가 일부러 나한테 사건을 흘렸다는 말인데, 왜? 짝사랑한 여자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경수를 몰락시키려고? 아니면 홍코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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