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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Oct 07. 2024

나비처럼 날아서 -30

30.

모여서 정지한 듯 흐르고 있는 구름을 쫓다 보면 머리를 맴도는 미련이 사라질 것 같았다. 밴쿠버행 대한항공 KE071. 이경수는 모자를 눌러쓴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승전이 열렸던 그날 잠실 야구장 하늘에도 구름이 떠 있었다. 마지막 회 큼지막한 파울 홈런의 뒷배경이 되어 주었던 옅은 먹구름. 공이 왼쪽으로 조금만 덜 휘어졌으면 파울이 아니라 끝내기 만루 홈런이 되었을 것을. 민준혁 앞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몇 년 동안 이어진 불행의 고리가 끊어질 거라 생각했다. 반복되는 실패의 고리를 풀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기자들의 취재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질까 봐 걱정되어 경기도 양평으로 집을 옮겼다. 단기임대 전원주택에서 지내다가 운영하던 야구장이 급매로 팔리자 출국 수속을 밟았다. 한적한 양평 생활이었지만 미련과 집착이 잔존하는 한 평온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실패에 지쳐 한국에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었던 것이었다. 머리도 식힐 겸 이민 사전 점검 차 밴쿠버에 있는 누나한테 가서 몇 달 쉬고 올 작정이었다. 

몇시간 뒤에 캐나다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하지만,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결승전 이후 시작된 두통은 양평에 가서도 좋아지기는커넝 갈수록 더 심해졌다. 큰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봤지만 뇌나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심리적인 이유라며 진통제 처방이 다였다. 집에서 타이레놀을 먹고 나왔지만 약기운이 떨어졌는지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 알을 더 먹고 목을 뒤로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빠!”

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네 살 된 딸 하진이는 주말에 늦잠 자는 준혁을 깨우는 알람 시계였다. 벌떡 일어나 하진이를 침대위로 안아 올려 장난을 치며 놀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아침 준비중인 아내 미나에게 아침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맑았고 마당 잔디는 푸르렀다. 현관문 옆 조그만 나무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겼다. 

미국 필라델피아 생활 2년째였다. 의정부지검 근무 마칠 때쯤 해외연수 기회가 생겨 건너왔다. 작년 봄 처음 필라델피아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여름 지나면서 적응이 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교민이 다 되었다. 덩달아 근처 뉴저지에 있는 한인 사회인야구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이경수와 격돌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아직도 가끔 마지막 대결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이경수가 헛스윙 삼진 당하는 모습은 정지 화면처럼 기억속에 박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밤사이 연락 온 게 있나 해서 핸드폰을 드니 카톡 신규 메시지 알림이 떴다. MBC 권기자였는데 이경수 소식 아느냐며 웹페이지 링크를 걸어 놓았다. 서둘러 링크를 터치해서 들어가니 신문 기사였다. 기사 제목을 본 순간 온 몸이 얼어붙었다. 눈동자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라 정신을 차리는데 한참 걸렸다.

<전 프로야구 선수 이경수, 미국 뉴욕에서 사망>

뉴욕 맨해튼 남부 포시즌 호텔 28층 객실에서 총상을 입고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어 자살로 추정된다고 했다. 비록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추도의 마음이 먼저 일었다. 

곧 이어 의문도 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속물적이며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자살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건을 더 파악해봐야 할 것 같았다. 정말 자살인지? 왜 그랬는지. 아직 박혜진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무의식이 준혁을 끌어 들였다. 

맨해튼이라면 필라델피아와 그리 멀지 않았다. 대학 선배가 뉴욕 영사관 법무협력관으로 있어서 도움을 청했다. 

“경찰은 자살로 종결할 예정이라고 해. CCTV 상으로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대. 머리에 난 탄흔을 봤을 때 근접거리에서 발사된 거래. 글록19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거지.” 

“다른 특이한 소지품은 발견된 건 없고요?”

“지갑이나 신분증 이런 것들이고, 가방에 두통약이 가득 들어 있었대. 타이레놀 말이야.” 

두통은 3년 내내 이경수를 괴롭히다 죽기 직전까지 함께 했던 것이었다. 

“자살한 이유는 뭐랍니까?”

“유서가 없어서 단정은 못하는데, 아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아. 캐나다에서부터 뉴욕까지 벌이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고 하더라. 자살 전날에 파산할 지경에 이를 정도로 큰 사고가 났나 봐.”

이경수가 캐나다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 신분이라 뉴욕 경찰에서 먼저 영사관으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영사관 선배는 캐나다 밴쿠버 영사관을 통해 파악된 이경수 행적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경수는 누나가 살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로 가서 어린이 야구 캠프를 차렸다. 프로야구 홈런왕 출신이라 한인뿐만아니라 캐나다 현지인들도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6개월도 채 안 돼 학부모들 사이에서 말이 돌기 시작했다. 스캔들, 갑질 및 폭언, 폭행 등 과거 저질렀던 불미스러운 일들이 금방 퍼져 나갔다. 결국 야구 캠프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반년 정도 밴쿠버 집에서 두문불출 폐인처럼 지냈다. 보다 못한 매형이 사업을 해보라고 뉴욕에 사는 재미교포 지인을 소개 시켜줬다.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 대형 식당을 인수해서 공동 운영하기로 했다. 투자금액의 대부분은 이경수가 대고 실제 운영은 지인이 맡는 조건이었다.

 투자금 전액을 지인 계좌로 입금한 날, 지인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초조한 이경수는 인수하기로 한 식당에 직접 찾아 갔다. 식당 주인은 가게를 내놓은 적도 없고 지인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식당에 찾아간 게 사망 전날이었대. 야구만 하던 사람이 멀리 미국까지 와서 보기 좋게 사기꾼에 걸려 든 거지. 경찰에서도 그게 자살의 결정적인 계기라고 판단하는 것 같아.”



“아!” 뇌혈관이 터질 것 같은 두통이 또 찾아왔다. 캐나다에서 유명한 병원에 다녔는데 여전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 상태에서 먼 길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타이레놀 두 알을 입안에 넣고 물을 마셨다. 두통이 가라앉자 이경수는 총을 집어 들었다. 글록은 겨울 밤바다보다 더 까맣고 차가웠다. 손에 쥔 총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

혜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혜진을 죽게 만들었던 것이 이렇게 따라다닐 줄 몰랐다. 십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때 잘못이 그렇게 컸었나 반문하며 민준혁을 떠올렸다. 당시 재수사만 없었어도 은퇴와 이혼, 이후 계속된 실패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고 구조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이 이어지자 멈췄던 두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총을 관자놀이에 갖다 대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머리에 차가운 글록이 닿자 죽음의 길을 열어 주듯 두통이 가셨다. 총구를 머리에 꾹 누르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보다 먼저 총알이 관자놀이를 거쳐 뇌를 헤집고 들어갔다. 경수는 손가락에 짙은 화약냄새를 남기고 훨훨 날아 올라 먼 길을 떠났다.





에필로그


혜진은 잠실야구장 실내 연습장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혼자 적막속에서 시퍼런 분노를 토해 내고 있었다. 주연의 말이 사실이었다. 경수와 주연은 오랜 기간 몰래 사랑을 주고 받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친한 동료 주연에게 눈을 돌리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심지어 결혼까지 약속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 두 사람에게 배신과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굵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와 경수의 관계를 주연이 몰랐을 거라 여겼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개월 넘게 사귀면서 철저히 나를 속였을 정도면 경수가 이미 말을 했겠다 싶었다. 악의적으로 각색해서 나를 한심한 여자로 비아냥거렸을 것 같았다. 

“혜진이 일방적으로 좋다고 쫓아다니는 거야.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자꾸 그러니까 되게 부담돼.” 

주연이가 경수와의 관계를 폭로한 것도 나를 떼어 놓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의문과 추측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모멸감이 밀려왔다. 경수와 주연 둘이서 나를 얼마나 하찮고 가벼운 여자로 봤을까? 원망과 분노가 자책으로 바뀌며 혜진의 이성은 힘이 풀렸다.

말도 못하게 초라해진 자신의 처지에 뱃속의 아기가 투영되면서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바보 같은 자신으로 인해 아기까지 부정을 당하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참을 수 없었다. 비참함이 뼈속까지 스며들며 온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길 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한기를 느낄 정도로 처절한 외로움이 혜진의 온 몸을 감싸 돌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상처는 아물겠지만 아기는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짐이 되어 기울어진 인생을 살아가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기를 지운다는 것은 생명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경수의 비인간적 행태와 다를 바 없었다. 혼자 살려고 잠시나마 아기와 강제 이별을 생각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아기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가기로 했다.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인적을 벗어나, 마을을 떠나 길을 나서야만 했다. 산등성이 올라서 평야를 가로질러 구비구비 돌고 돌아 더 이상 갈 곳 없는 길의 끝. 거기서 이별을 하고 싶었다. 길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혜진의 뇌는 통제력을 상실한 채 감정의 선이 가는 곳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순교자 마냥 홀로 이 아픔과 고통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었다. 모른 척 아무일 없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버릴 경수를 두고 갈 수 없었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싶었다. 

혜진은 핸드백에서 수첩을 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몇 줄의 글을 남기고 찢어서 접었다. 실내 연습장을 나와 3루쪽으로 향하는 복도로 접어 들었다. 계속 나가면 밖으로 가는 출구가 나올 듯했다. 바깥으로 빠지는 갈림길에서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혜진은 망설임 없이 야구장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복도는 3루 덕아웃으로 이어졌고 벤치로 가서 앉았다. 

조명이 꺼진 잠실야구장의 잔디는 푸르지 않았다. 희미한 달빛이 깔린 잔디는 적막했다. 길을 떠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구두를 벗고 벤치위에 올라 목에 두른 스카프를 벗어 들었다. 벤치 뒤 난간위로 올라가 철제 받침대를 잡고 스카프를 묶었다. 목을 스카프에 매 달고는 난간위에 딛은 발을 뗐다. 

순간 잠실 밤하늘이 둥글게 흔들렸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었다. 곧 이어 고통이 몰려왔다. 스카프가 목을 압박하면서 뇌로 유입되는 산소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온 몸이 경련을 일으켰고 스카프를 잡으려 손이 목으로 향했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혜..혜진이 너...”

경수였다. 장갑을 찾으러 덕아웃으로 돌아왔다가 혜진을 발견한 경수의 목소리였다. 혜진은 목이 끊어질 듯한 고통속에서 경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어가는 쉰 목소리로 고통에서 벗어날 마지막 구원을 청했다. 

겨.. 경수…”

혜진의 섬뜩한 모습에 얼굴이 하얘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혜진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스카프를 손에 잡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혜진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무서워서 발이 안 떨어지는지, 무의식의 누군가 시키는 건지 경수는 외면했다. 혜진의 움직임이 잦아들어 미동도 보이지 않을 즈음 그제서야 다가갔다. 혜진의 고개는 앞으로 꺾여 있었고 팔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죽었나?’ 혜진의 몸을 살짝 앞으로 밀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죽음을 한 번 더 확인하려는 지, 마지막 남은 목숨까지 앗아가려는 지 혜진의 몸을 아래로 잡아 당겼다가 다시 놨다. 목이 스카프에 ‘턱’ 걸려 위로 올랐다 다시 아래로 꺾였다. 

죽음을 확인한 후 주위를 둘러보고 벤치 위의 뜯겨진 수첩 메모지와 핸드폰을 챙겼다. 허둥지둥 급히 나가다가 복도로 가는 길목에 장갑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경수는 밖으로 나가는 길로 접어 들었고, 혜진은 이 세상 길을 벗어나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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