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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Aug 23. 2021

편의점에서 육포를 사 왔습니다. 비건이더라고요.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요?


“이번에 나온 신메뉴 먹어보셨어요?”

“오늘 점심은 비건 도시락입니다!”

“이 식당은 비건 옵션이 된다고 해요. 가족이랑 같이 오면 좋겠어요.”

 

  잠잠했던 채식 시장이 갑자기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가치와 신념을 소비하길 원하는 MZ세대의 가치관과 맞물리면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한 정보 공유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비건 식당이 생기면 누구보다 빨리 다녀와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비건 옵션이 되는 가게를 만나면 유레카를 외치며 대신 홍보를 한다. 채식에 대한 애정으로 소비자가 누구보다 발 빠른 마케터가 되고 있는 진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식문화도 덕질이 되다니. 

    

'비건육포' 출시와 동시에 올라오는 인증 게시물


  채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식물성 대체육의 보급화도 순식간에 일어났다. 외국에서 넘어온 값비싼 ‘비욘드 미트(beyound meat)’를 대신할 대항마들이 여기저기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간편하게 채식을 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긴 하다.

    

  소소하게 집에서 채식 밥상을 공유하기 바빴던 나의 인스타그램에도 변화가 생겼다. 레시피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이야기를 나누길 원하는 사람이 생겼다.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비건 계정들이 늘어나면서 여기저기 오늘은 뭘 먹었는지 구경을 하러 다니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채식이라고 하면 왠지 수련장에 틀어박힌 도인의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신세대의 문물이 되어간다. 편견으로 얼룩진 기성세대의 문화에서 탈피하려는 몸부림이 생각보다 거세게 느껴진다.



             

“일해라 절해라 해주실 언부장님들을 모십니다.”     


  한국의 대체육 시장 대표 주자인 언리미트(unli-meat) 브랜드에서 위의 슬로건을 보고 ‘저건 내가 잘할 수 있겠다!’ 싶어 단숨에 신청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리던 날, ‘이게 뭐라고.’ 싶었지만 왠지 채식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벌써 ‘상추 부장’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지 2개월이 지났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닉네임으로 정했는데 어쩌다 보니 친숙하기 그지없는 상추가 되어버렸다. 바질 매니저님을 보면 이름만 봐도 세련됨이 흐르는 것 같아 그렇게 이질적일 수가 없지만 말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Zoom에서였다.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비대면 화상회의라니. 요즘 친구들은 화상 수업을 듣기 때문에 많이 익숙하다고 들었는데 일방적인 ‘인터넷 강의’ 시대의 나는 멋쩍게 들어가자마자 음소거와 화면 끄기를 누르고 시작을 했다. 동생과의 영상통화도 왠지 간질거리는 마당에 처음 만난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하라니...     


  나만 어색한 것은 아니었는지 스무 명이 모인 가상 회의장이 아주 고요하고 적막하게 흘러갔다. 바질 매니저님이 말씀하실 때만 빼고 말이다. 어떻게 해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여러 대답들이 오갔다.


  육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시작하신 분도 있었고 환경 문제, 동물권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진 분도 있었다.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시작한 나의 경우에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대의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타적인 마음에서 하는 채식은 어떤 느낌일까. 다양한 계기로 시작한 일들이 이렇게 모여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정말 감동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단톡방에 묶였다. 


  ‘채식을 지향한다.’라고 생각을 하면 모두 비슷한 생활을 할 거라는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을 한다거나, 해산물을 먹는 페스코, 계란과 유제품까지 먹는 락토 오보 등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그렇지만 하루에 한 끼는 꼭 채식으로 밥을 먹고 인증을 올리는 규칙으로 인해 하루 종일 단톡방이 깜빡였다.


  "시리얼과 비건 요거트 입니다."

  "여름이 끝나가면 콩국수가 사라질까 봐 급하게 먹어보았어요.."

  "전 단호박 먹었는뎅 사진은 없네융!"


 이렇게 같은 지향점을 가진 이들의 다양한 생활을 엿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최고의 경험으로 여겼었다. 대학생 때는 학생회실이 오히려 집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많은 이들 속에서 지내야만 부족한 나를 채우고 열심히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왠지 나의 특성들은 다 단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빛나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지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조금 더 흐려졌는지 모른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내 것은 버리고 외부의 것은 담기 바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들로 버무려진 혼탁한 내가 되고 나서야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는 바깥을 향해 단단한 날을 세웠다. 더는 세상 속에 나를 내어주지 않을 거라며 주먹을 꽉 쥐곤 했다.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니 내 삶 속에 나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늦게 알았다. 그 무렵 공황발작으로 인해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누에고치 속에서 완성형의 나비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방 한 칸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데 중점을 두기도 했다. 바깥의 것들은 나를 괴롭히기 마련이고 삶을 흔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렇게 또 이분법적인 사고를 했었다. 더는 사람들 속에서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박혀서 살고 싶은 소망이 가득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 핸드폰으로 바깥세상을 만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로 인해 하루가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느낌이지만 나름의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운다. 다양한 시선과 각양각색의 방법들 속에서 나는 어떤 걸 추구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이제는 내 마음속 날카롭게 뻗어있는 가치관과 신념들이 세상 속에서 다듬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전처럼 깎여서 없어지거나 흐리게 섞이거나 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에 좋아하는 걸 더하거나 이제는 시시해져 버린 낡은 것들을 덜어내거나 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성장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멋지고 근사한 것을 좇기 바빴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사람들의 고유한 색을 보게 된다. 어떻게 삶을 일궈내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색깔을 피어내는지가 관심의 중점이 된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모든 이들의 삶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각자마다 가지는 삶의 방식과 방향성,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들, 문제를 만났을 때 대하는 태도나 여유를 즐기는 방법들의 다채로움이 신비롭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그런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스스로도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나와 같을 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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