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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Oct 11. 2021

비건에게도 명절은 명절입니다

여전히 전 부치기 노동자 신분이고요



  제사를 지내는 집이 얼마나 남았을까.


  엄마는 매번 돌아오는 제사 앞에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조상 덕을 본 사람들은 이미 해외에 있다고.

     

  그럼에도 누구는 명절에 해외여행을 갔다더라, 또 누구는 가족 여행을 갔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크게 부럽지는 않았었다. 맛있는 것들이 눈앞에 가득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뒤집어쓰고 전을 부치고 있을 때면 갑작스레 밀려오는 현자타임과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명절 하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큰엄마와 작은 엄마, 우리 엄마까지 해서 세 분이서 족히 10배는 넘는 이들의 음식을 장만했어야 했다.


  왜 그렇게 항상 새벽부터 서둘렀는지 몰라 잠에서 깨기 싫어 툴툴대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숫자로 친척들의 수를 헤아려보니 그 무게가 확 와닿았다. 그것도 매번 돌아오는 명절이라니. 

 

  새벽부터 졸린 눈을 하고서도 동생과 나는 부엌에서 엄마 옆에 찰싹하고 붙어 있었다. 7남매의 친척 중에서도 나이가 비슷한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때문에 명절에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가끔 빨리 익은 전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밀가루나 계란이 떨어지면 그걸 빌미로 동네를 나가 심부름을 다녀오기도 했다.

     

  전이면 전, 튀김이면 튀김, 꼬지면 꼬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 투성이었지만 매번 으리으리한 상을 차려내시던 며느리 군단의 모습을 떠올리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엄마께서도 시집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셨었는데 내재적 DNA라도 어디 숨겨져 있는 걸까.




  논밭이 가득한 곳에 위치해있던 시골은 부엌까지는 난방이 안되었다. 때문에 설날에는 끔찍한 추위와도 싸워야만 했다. 차가운 바닥이 얼마나 시리게 느껴지는지 양말을 두 개는 더 겹쳐 신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언 발을 녹여가며 쪼그려 앉아 전을 주워 먹는 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못생기고 흐트러진 전을 찾아 동생과 나는 서로의 것이라고 찜을 하기 바빴다. 전을 빨리 먹고 싶어서 일부러 모양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많이 고생스럽고 추웠지만 따끈한 떡국을 먹고 아랫목에 앉아 할머니가 꺼내 주신 두꺼운 이불을 덮고서 귤을 까먹던 기억도 남아있는 걸 보면 참 행복했던 느낌이다.


  날이 갈수록 찾아오는 친척들이 줄었다. 예전에는 명절이 다 끝날 때까지 손님을 받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당일에도 우리 가족뿐이었다. 점차 명절 음식이 간소화되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내가 비건이 된 것도 한 몫했었다. 집에서 제일 잘 먹는 사람이 한 명 빠지니까 어쩔 수 없이 양을 줄이게 된 것이다. 작은 프라이팬에 버섯과 부침가루로만 전을 부쳐서 먹곤 했으니까.

               


 

  명절이 끝난 직후에 아빠를 따라 나주에 있는 다보사에 다녀왔다. 템플스테이를 자주 다녀와서 알지만 보통 사찰음식에도 완전한 비건이 아닌 경우가 많았기에 별 다른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계시는 총무님께서 모든 음식이 완전 비건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반찬이 거의 뷔페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작해야 나물 정도 먹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걸 전부 먹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상상조차 못햇었다.


  연근과 감자, 당근, 가지로 전을 굽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나물까지 있었다. 거기다 진한 된장 맛이 가득한 시래기 된장국에 눈이 돌아가서 두 그릇은 해치웠다. 반찬을 가득 퍼온 모습을 보고 아빠께서 체할까 봐 걱정하셨지만 맛있는 밥상 앞에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 후로 우리집도 야채로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다보사에서 먹었던 기억을 살려서 감자, 당근은 두껍게 썰어 한 번 찐 후에 부침가루에 묻혀 전을 부쳤다. 가지는 소금을 뿌려 물기를 제거한 후에 부치니까 수분이 많이 빠져서 질척이지 않아 좋았고 가끔 별미로 연근 전도 구웠다.


  빼놓을 수 없는 고소한 두부전도 반찬으로 뚝딱이었다. 번거로워서 자주 먹을 순 없지만 명절에 요리를 가득해서 냉동실에 얼려놓는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주기만 하면 정말 바삭한 야채 튀김과 전의 어느 사이쯤의 요리가 완성된다.



      

  갈수록 명절의 의미는 없어지는 느낌이다. 그 특유의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아쉬울 때도 있다. 가끔 어린 날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낑낑대며 얻어먹던 뻥튀기나 과자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추억에 휩싸여 다시 사 먹어도 절대로 그 시절 먹었던 맛은 안나는 묘한 마법이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갓길에 대어서 동생과 둘이 나눠먹었던 컵라면도 그렇고 추억의 맛이 있는 듯하다.

      

  내년 설에는 외할머니께서 좋아하시던 LA갈비를 콩고기를 이용해 요리해보려고 생각 중이다. 아마 하늘에서 "이게 어딜봐서 고기냐." 하고 어이없어 하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손녀가 잘 먹는 모습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며 위안을 한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함께하는 이들과의 따스한 추억이 아닐까 싶다.


  멀리서 온 큰 딸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주시려고 비건 요리를 공부하시는 우리 엄마도 과일을 차 한가득 싣고 와서 먹을 걸 골라보라고 하시던 아빠도. 그리고 매번 함께 갈 비건 옵션이 되는 식당을 열심히 찾아준 동생도 있고 말이다.


  소중한 것들을 떠나보내며 또 소중한 기억들로 채워야지 하곤 다짐을 한다. 그렇게 매순간 따스했던 명절처럼 추억을 채워가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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