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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Oct 20. 2021

비건 딸을 두고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샤브샤브는 사랑입니다. 반반 냄비면 더 좋고요.


     

“이제 딸이랑 밥도 한 번 같이 못 먹겠네.”    


 

  비건이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빠와 국밥을 먹으러 돌아다니지 않는다. 밥을 빌미로 딸과 매번 데이트를 하던 아빠는 이제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잃은 셈이기도 했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던 시장의 국밥도, 멀리 차를 타고 나가야만 맛을 볼 수 있던 기사식당도 더는 같이 갈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빠의 유일한 낙이 사라졌다.



      

  한참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도 때도 아빠는 점심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 오시곤 하셨다. 수험생에게 합법적인 일탈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선 한 시간 거리의 담양에 유명한 국숫집을 데려가곤 하셨었다. 아빠는 나주에 있는 곰탕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탁 트인 평야와 파란 하늘을 좋아했다. 도서관에서 보던 세상과는 너무 다른 풍경에 나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날들이었다. 

     

  “쉬었다 해라.” 하는 가벼운 말 대신 아빠는 가끔 자취방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장 통닭을 사 오곤 하셨다. 매번 운동삼아 갔다 왔다 하시긴 했지만 왕복 2시간쯤 되는 거리였다. 실은 나도 많이 아쉬웠다. 함께 시골에 내려가 바비큐를 구워 먹던 시간도 그리웠고 한 여름에 삼계탕 하나를 두고 둘러앉아 나눠먹던 날이 마치 꿈만 같았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의 화살은 언제나 나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비건이 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함께 먹는 밥상에서 고기반찬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함께 먹지 못하는 고기에 부모님은 미안함을 보이시곤 하셨다. 딸이 먹지 못하는 맛있는 걸 눈앞에 두고 먹을 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들만의 배려이기도 했다. 


  또 외식도 대부분 보리밥집이나 산채비빔밥을 파는 곳을 다녀와야만 했다. 가끔은 더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것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만한 비건 식당이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낸 걸까. 나 하나 좋자고 가족들의 삶을 망쳐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들을 하며 미안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주도에는 어디를 가나 해산물과 흑돼지고기가 가득했다. 뚜벅이 셋이서 갈 수 있는 음식점은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대부분의 비건 식당은 차를 타고 나가야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도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점이 서럽기까지 했던 밤이었다. 


  비건이 된 나는 너무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되는 줄 몰랐으니까. 아마 일찍이 알았더라면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미루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숙소에서 밥집을 검색했다. 저녁시간이 거의 지나간 시간쯤이었다. 여러 번의 골목길을 거쳐 샤브샤브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번화가에서도 한참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한 곳이었다. 옆에 큰 테이블에선 회식이 한창이었는지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 구석에 조심히 앉아 사장님께 육수를 맹물로 부탁드리고 고기를 못 먹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맛있는 걸 못 먹냐며 안타까워하시다가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일단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와서 샤브샤브집이라니. 

     

  조금 기다리자 사장님이 야채를 한 가득 들고 돌아오셨다. 그런데 또 조금 있다가 처음 받았던 양만큼의 야채가 또 나왔다. 



  깜짝 놀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니 야채만 먹는다고 해서 걱정되어 한참을 쳐다보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야채를 이렇게 잘 먹는 줄 몰랐다면서 배부를 때까지 먹으라며 손을 잡아주셨다. 제주도까지 와서 위로를 받다니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8시에 들어가서 10시가 되어서야 식사가 끝났다. 엄마도 동생도 이렇게 맛있는 샤브샤브를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주인아주머니께도 너무 맛있는 밥을 먹었다고 이야기하고 즐겁게 거리에 나왔다. 패딩을 잔뜩 여며야 했던 날이었지만 마음만은 뜨끈한 국물만큼이나 은은하게 데워지고 있던 밤이었다. 




  돌아와서도 비가 오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 샤브샤브집을 찾는다. 그리고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싶을 때도 여전히 샤브샤브집을 고른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어려워져서 엄마는 샤브샤브용 반반 냄비를 사기도 했다. 여전히 고기를 먹는 가족들과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한 공존의 밥상이었다.

      

  음식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장을 받은 날들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의 치킨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할머니께서 마지막 숟가락을 뜨셨던 슬픔의 전복죽이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 먹었던 매운 떡볶이였기도 하고 어린 날의 추억이 담긴 경양식 돈가스이기도 하다.

      

  지난날의 추억들을 곱씹으며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을 그려본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얼마나 많은 식사에 우리만의 추억을 담아내게 될지 말이다. 누군가의 흔한 샤브샤브가 우리 가족의 특별한 외식이 된 것처럼 또 우리는 그런 날들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흔한 음식 속에 따뜻한 기억 하나. 1년, 365일, 세 끼. 한 살의 나이마다 1000번이 넘는 추억이 언제나 우릴 향해 기다리고 있다. 



  먼 훗날 어떤 오늘을 추억하게 될까. 굶주림에 길을 헤매다 만난 시래깃국도, 친구 어머님께서 해주신 간장 떡볶이도, 엄마가 고민해서 만들어주신 비건 열무김치도, 당근을 편식하던 내가 빠져버린 당근 라페도. 모두 다 기억하며 오늘도 따스하게 살아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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