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코로나가 시작된다면
비건을 시작하기 전에 넷플릭스의 ‘What the health-몸을 죽이는 자본주의 밥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었다. 영상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니 비윤리적으로 길러진 동물들과 병든 가축을 섭취해 비틀어진 삶을 이어나가는 우리가 있었다.
‘왜 아무도 우리에게 제대로 된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거대한 축산업과 연계된 건강 관리 협회들을 볼 수 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수많은 협회가 육식 산업을 지지하는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없이 동물을 하나의 ‘식품’처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병든 식품’을 말이다. 그 속에선 동물들만 고통을 받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들의 문제로 이어졌다.
과다한 당 섭취가 제1의 원인이라고 알고 있는 당뇨도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는 지방질의 문제였고 우유가 골다공증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골절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건강해지기 위해 섭취한 모든 것이 나를 해치고 세상을 해치는 길이라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육식을 멀리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었다. 눈에 보이니까.
요즘 인스타그램을 보면 비건들 사이에서 넷플릭스의 ‘Seaspiracy-씨스피라시’를 보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도 육식을 끊은 뒤까지도 제일 놓지 못했던 것은 초밥이 아니었나. 그래도 우리와 가까운 동물보다는 생선이나 새우의 형태가 가장 하나의 ‘식품’으로 인식되기가 쉬웠던 것 같다. 같은 생명이라고 인지하기도 전에 ‘물-고기’ 물에 사는 ‘고기’로 배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쉬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틀어본 영상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가져왔다. 물에 사는 동물을 생각하면 고래, 물범, 펭귄, 북극곰, 돌고래 정도였었으니 물고기들은 이미 동물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그런 생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인식을 바꾸기도 했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살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되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씨스피라시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에 의문을 가지던 작가분이 만들어낸 영상이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피를 흘리는 거북이 사진이 아마 제일 유명할 것이다. 환경을 해치는 플라스틱들이 결국엔 바다로 가서 생명들을 괴롭히고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더 정확히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들로 영상은 시작된다.
그러다 작가는 관광 단지에서 보이는 돌고래 쇼를 파헤치게 된다. 돌고래 포경이 일어나는 일본의 와카야마현의 다이지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업들의 무자비한 학살 현장이 이어졌다.
돌고래 학살은 참치산업과 연계되어 있고 또 그 단체들은 환경보호를 위한 협회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전에 ‘자본주의 밥상’에서 보았던 형태와 비슷하게 얽혀있었다. 그래서 이 정도는 뒤에 나올 이야기에 비하면 그나마 덜 충격적이었다.
멸종 위기인 상어들을 보았다. 샥스핀을 얻기 위해 지느러미가 잘려 나간채 바다로 그대로 버려지는 상어들이었다. 사람이 시간당 죽이는 상어는 11000~30000마리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그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먹을 생선을 위해 던지는 그물에 걸려 잡히는 ‘부수 어획’으로 이 절반이 죽어간다.
상어라는 1급 포식자가 죽어가면서 생태계가 파괴 되고 2급, 3급 차례로 내려가면서 바다 전체는 멸종 위기를 겪고 있다. 보이지 않아서 몰랐을 뿐 바다의 숲을 담당하고 있는 산호초들까지 파괴되며 바다는 계속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땅에서 매년 사라지는 숲의 면적은 10만㎢. 1분마다 축구장 27개가 사라져 간다면 저인망 어업이 파괴하는 면적은 1,600만㎢, 1분마다 축구장 4,316개가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보이지 않는 바다 속의 환경이 얼마나 고갈되고 있는지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2048년에는 바다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보는 자료 조사도 있었다.
내가 알던 지식이 또 한 번 검증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실제로 해양생태계를 위협하는 건 거북이에 코에 꽂힌 플라스틱 빨대가 아니라 어망, 어업 도구들이 약 50%나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나 하는 허무함도 몰려왔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당연히 올바른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아주 사소한 일을 막는 것에 그치고 있었다는 것이 나를 무력하게 했다.
고등어에 풍부하다고 배워왔던 오메가3 지방산도 결국 해양 조류가 만들어내 생선에 몸 속에 쌓이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생선 살을 짜내어 기름을 얻는 아이러니함이라니. 우리는 무지로 인해 말도 안되는 일들을 용인하고 있었다.
생선을 먹으며 계속해서 생물 농축에 의한 중금속을 섭취하게 될 뿐이며 부수적으로 많은 생명이 죽어감은 물론, 해상 노역을 지지하는 셈이 되었다. 실제로 태국에서는 블러디-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블러디-쉬림프라고 할 정도 극심한 노역이 자행되고 있었다.
작가는 실망감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어업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또 돌고래들의 대량 학살을 보았다. 그것도 결국 인간의 입장에서 본 생태계 파괴의 현장이었을 뿐이었다는 것. 결국 환경학자들은 말한다. ‘먹지 않는 것’이야 말로 우리를 지키고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일이라고.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동물을 ‘섭취’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야생동물’에 한해서 그랬을지는 몰라도 이 영역이 우리 앞까지 와있다는 생각을 한다.
매년 일어나는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으로 희생되는 동물들의 수만 봐도 그렇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죽임을 당해 버려지는 ‘부수 어획’으로 대표되는 고래, 상어, 돌고래들까지 생각하면 더는 이러한 식습관을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상에서의 환경 파괴가 코로나19였다면 해양에서의 파괴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이산화탄소의 최대 저장고로 불리는 산호섬들의 파괴가 서서히 눈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곳곳에서 비명이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우리는 채식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선택에 의해 하는 채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 어류들을 섭취하지 않고 식물을 통해 중간과정 없이 직접적인 영양원들을 섭취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만 건강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비건 생활이었다. 언제든 다시 육식을 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마음을 먹었기도 했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나로 시작한 일이 모두를 위한 일이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비틀거릴지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서히 모든 식습관을 돌아보고 올바른 정보를 나누며 현실을 직시하는게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5년 뒤, 아니 당장 1년 뒤에 살아갈 ‘나’와 ‘우리’를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채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택적으로 하는 채식 아니라 이제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렵지만 우리는 또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깨끗한 공기를, 건강한 대지를,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우리의 삶으로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일이야 말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가장 값어치 있는 위대한 일이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오늘도 채식을 하지 않는다. 동물을 먹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우리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결국에 해낼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 모두를 되살리는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