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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각 Oct 31. 2023

어떻게 유학 비용을 마련할 것인가

6. 서 호주 로드트립

    한국에서 진행한 영국 유학 준비과정은 한국 학기를 따랐기에 2월에 시작해 12월에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학기가 9월, 늦으면 10월에 시작이었습니다. 이 어정쩡하게 붕 뜬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NCUK과정을 막 시작했던 2월부터 미리 고민했습니다.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을 다 받는다 해도 더 필요한 게 돈이었기에 과정 후 남는 9개월간 무얼 해야 하는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명확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현대자동차 공장 계약직 근로자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확실한 임금이 보장됐지만 확실히 뇌가 굳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돈을 버는 동시에 막막한 외국 생활을 대비도 할 수 있으면 몹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저는 과정이 끝나면 바로 호주로 떠나야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었습니다.

    NCUK 과정 1학기가 끝나고 6월인가 7월쯤 곧장 내년 1월에 호주로 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지원하고 호주 내에서 가장 최저 임금이 높다는 서호주의 주 도시 퍼스로 향하는 편도 배행기를 예매했습니다. 이 모든 계획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가정들 하에 세워졌습니다. 그 가정들이란 NCUK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해 1등 장학금 6000파운드를 받고 Sheffield 대학교에 있는 Industry year를 포함한 화학과 학석사 통합 과정에 50% 장학금 및 연간 2500파운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합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군대에 있으며 향후 6년 치 계획을 짜 놓은 시점에서 뒤는 없었기에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모든 것을 해낸다는 생각으로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앞서 적은 글에서 언급했듯 성공적으로 NCUK 과정을 마쳤습니다. 6000파운드 장학금을 받았고 MSc Chemistry with a year in Industry에도 연간 2500파운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합격했다. 다만 학비 50% 면제 장학금은 지원을 따로 하고 이듬해 4월쯤 결과가 나온다 했기에 기다려봐야 했습니다.

    17년 1월 중순, 퍼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기대 설렘 떨림 그런 마음들 따윈 없었습니다. 단지 '돈을 많이 벌어 와야 한다', '호주에 있는 동안 영국살이를 대비해 실생활 영어를 늘려야 한다' 같은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퍼스에 도착해 미리 다음 카페를 통해 연락해 둔 한국인 sub letting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 머물며 이미 워킹홀리데이를 몇 달간 보낸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빠르게 중요한 일들을 해치웠습니다. 퍼스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1000불짜리 어찌어찌 굴러는 가는 중고차를 구매했고, ANZ 은행 통장을 계설 하고, 이력서를 만들어 돌렸습니다. 주변 생활권과 도시의 구조와 거리 및 상권들을 발로 걷고 차로 돌아다니며 속성으로 익혔습니다. 운이 좋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카보로 비치 앞에 있는 Amberjacks Fish & Chips에 주방 알바로 일을 구할 수 있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Pamelia Hilton 호텔의 주방 설거지 및 청소 보조로 세컨드 잡과 도심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에서 주방 설거지 알바로 또 다른 일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 가지 일을 동시에 돌리며 주말에는 틈틈이 한국어 과외를 뛰었습니다. 평균 매주 약 60시간, 혹은 많이 일할 때는 66시간가량을 일하며 새벽 6시 20분에 출근해 밤 12시가 넘어 일을 마치는 생활을 5개월간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단기간에 정말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많이 일했고 많이 아꼈고 시급도 높았고 물가도 싼 덕이었습니다. 중간에 피부병으로 간지러움에 며칠간 잠을 설치다 진짜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지만 도저히 돈 생각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믿음직하지 못한 GP에게 받아온 허여 멀 간한 약을 온 팔에 바르고는 얼음을 잔뜩 올린 채 억지로 버티며 일을 했습니다. 4월 어느 날에는 호텔에서 밤늦게 일을 마치고 텅 빈 시내를 걷다 까먹고 있던 50% 학비 장학금에 뽑혔다는 이메일을 받고는 밤중에 환호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계획했던 모든 것을 이뤄냈습니다.

    돈 버는 것 외에 일을 하며 정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가끔 짬이 날 때면 정말 좋은 시간도 많이 보냈습니다. 고됐지만 하루하루가 늘 행복했습니다. 호주가 너무 좋아 영국 유학이고 꿈이고 뭐고 다 떼려 치고 여기 정착할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깡다구가 생겼고 스쳐가는 인연에 익숙해지며 더 이상 씁쓸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못난 실수들을 통해 반성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할 수 있었고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면 국적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나온 주제가 여행이었습니다. 어마 무시하게 멋지고 다양한 호주 대자연으로의 여행에 관한 얘기는 늘 모두를 두근거리게 했고 설레게 했습니다.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돈을 번 김에 마지막 한 달은 통째로 로드트립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호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는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이곳을 일만 하다 떠나는 것은 도저히 섭섭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딱 한 달 앞두고 94년식 35만 킬로 도요타 Camper Van을 독일 커플에게서 2400불에 사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은 NCUK에서 만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대한미국 놈을 호주로 불러들여 둘이 떠났습니다. 미리 본인 여권을 사진 찍어 보내라고 한 뒤 냅다 퍼스 행 비행기 표를 친구 놈 이름으로 끊어 카톡으로 보내고서는 타고 오라고 해서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달간 서호주 해변을 따라 계획 없이 자유롭게 떠났던 5000킬로의 여정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돌이켜 봐도 참 꿈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을 줄이야.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속 편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줄이야. 우리는 매일 실없는 소리, 속 깊은 얘기 등을 하며 해안, 사막, 도로를 누볐고 내일의 일은 전날 밤이나 내일이 돼서야 생각했습니다. 지도를 보고 그냥 여기 한 번 가보자 하면 가는 것이었고 어디가 마음에 든다 하면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피나클스 사막에서 은하수를 보며 굽던 스테이크, 에메랄드 빛 바닷속에서 열대어와 함께 하던 수영, 박스 채로 댄 머피에서 사다가 마시던 맥주, 도로에서 박을까 무섭던 캥거루들, 제 키를 훌쩍 넘던 개미집, 세계에서 가장 길다던 제티 끝자락, 해안 절벽 옆 언덕에서 본 붉은 주황빛 노을, 프리맨틀 바다 위에서 떨어지던 스카이 다이빙. 모든 게 다 평생 잊지 못할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7월이 중순으로 넘어갈 즈음, camper van을 다음 여행자에게 팔고 1200만 원을 통장에 남긴 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다가올 4년 간의 영국행을 앞두고 보낸 꿈같은 7개월 간의 서호주 생활이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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