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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각 Oct 31. 2023

영국 유학,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7. 영국 유학 첫 2년

    한국에서 한 달 남짓 시간을 보내고 9월 중순 다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런던으로 향하는 편도 비행기였습니다. 4년간의 영국 유학, 이 유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당연히 '향 화학자'가 되는 것 혹은 '향 화학자'에 가까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부 목표들을 세웠습니다.


    - 1, 2학년 공부 First로 마치기

    - 부딪히고 깨지며 어떻게든 영어 실력 쌓기

    - 가능한 절약 절약 그리고 또 절약하기

    - 2년간의 성적과 탄탄한 CV로 향 화학자와 가장 연관이 있는 3학년 인턴 자리 잡기

    - 마지막 4학년 석사 과정 역시 First로 마치기

    - 끝으로 이 모든 배움과 학력 및 경력을 바탕으로 향 화학자로 취업하기


    먼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호주에서 그랬듯이 빠르게 생활 기반을 잡아갔습니다. 통장을 개설하고,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핸드폰을 개통하고, 학교와 도시 구조를 파악했습니다. 동시에 일주일 간 여러 방들을 둘러보며 예산에 맞는 저렴하면서도 학교와 가까운 방을 구했습니다. 보통 1년 계약이 기본이지만, 집주인을 설득해 9개월 계약을 맺었습니다. 여름방학 3개월간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적지 않은 돈의 방값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냉장고를 채우고 기본 살림살이들을 장만하고 나자 학기 시작까지 딱 일주일이 남았습니다. 그 일주일 간은 친구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것이 몹시 중요했기에 한국인은 기피했습니다. 영국 유학까지 와서 한국어 실력을 늘리는 짓 따위는 반드시 피해야 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간 잠시 머물렀던 NCUK 선배 집의 영국인 하우스 메이트와 마음이 맞아 친해졌고, 그 친구를 통해 다른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습니다. 또 그 친구와 학기 시작 전 여기저기 쏘다니다 귀여운 유럽 아가씨 눈에 걸려 영국에 온 지 2주 만에 코가 꿰이고 말았습니다. 연애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거기다 외국 아가씨는 상상도 못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있었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자리가 잡히고 생활이 안정되자 곧장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공부는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온종일 영어를 쓰니 저녁쯤이 돼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일 수였습니다. 집에서는 밥만 먹고 잠만 자고,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복습, 예습, 과제, 시험 준비 등을 하다 보니 정신없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가끔 한 번씩 친구들을 만나고 데이트를 가긴 했지만 이런 특별한 일은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했습니다. Sheffield에서의 화학 공부는 몹시 즐거웠습니다. 학과에는 화학이 좋아서, 화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온 친구들로 가득했고, 화학만 주야장천 공부하니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었고 영어로 글을 적는 게 한국어로 적는 것보다 더 편해졌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향 화학자에 대해 틈틈이 조사를 하면서 이쪽 산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현실적인 직업들과 기회가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방학이면, 어떻게든 아껴 모아둔 돈으로 친구들 혹은 안나와 여행을 갔습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아일랜드, 스페인, 불가리아, 스페인 등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여행 계획과 돈 관리는 항상 제가 주관했습니다. 조사하고 비교하고 엑셀로 정리하고, 어디든 가기만 하면 즐거울 테니 가능한 한 싸게 갈 수 있게끔 계획을 짜고 실행했습니다. 그렇게 늘 알차고 즐겁고 알뜰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어떻게 그 돈으로 여기저기 여행을 잘 다녀오냐고 놀라워하셨습니다.

    2년이 지나고, 저는 계획했던 모든 것들을 다 이뤄내고 있었습니다. 1, 2학년 공부를 몹시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고, 영어 실력 또한 비약적으로 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녔음에도 통장 상황은 기존에 예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좋았고, 끝으로 3학년 인턴 자리도 모두가 선망하는 가장 좋은 회사에 향 관련 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지난 2년 동안 아주 중요한 사실도 하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향 화학자 일이 제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조사를 해나가며 알게 돼 향 화학자 일은 제약 연구원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Organic Chemisty에 통달해 어떻게 필요한 분자를 얻을 수 있는지 디자인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문제는 부를 해보니 제가 Organic Chemistry에 끔찍하게도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능뿐만 아니라 크게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향 화학자가 궁극적으로 하는 일은 정말 멋졌지만 정작 매일 하게 될 일은 제게 맞지 않았습니다. 씁쓸하지만 이건 고집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춘다 한 듯 그 옷이 편하고 마음에 들리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빠르게 인정하고 다른 방향을 찾기로 했습니다. 분명한 건, 역시 향이 좋았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화학적으로 연구해 유용케 하는 일이 하고 싶었습니다. 인턴을 하며 실제로 관련 분야에 일을 하다 보면 눈이 트이며 다른 맞는 기회가, 제가 맞는 기회가, 흥미를 끄는 기회가 보일 거라고 생각하며 영국에서의 첫 2년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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