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생각 Nov 02. 2023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9. Masters in Chemistry

    행복이란 복합적이고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12년이나 지나 깨달은 뒤, 저는 제 행복의 요소들에 대해 고민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코로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전염병 상황에 도시 및 나라가 봉쇄되어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으니 혼자 마음껏 고민하고 사색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코로나 덕에 다른 사람들에게 여차저차 왜 밖에 안 나가는지 설명해 줄 필요도 없었고 원래라면 바깥에 즐비했을 여러 유혹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간 석사 논문을 쓰다 집중이 안되면 사색하고 그러다 또 논문을 쓰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제와 '아 행복은 단편적이 아니며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해서 지난 시간 제가 생각해 왔고 밟아왔던 길이 어리석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일'이란 여러 행복의 구성 요소 중 큰 요소였고 오히려 다른 요소들을 신경 쓰지 못하고 에만 집중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에 대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뤄낸 지금이 딱 다른 요소들을 생각하고 챙기기에 좋은 시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내 행복에 '일'이 아닌 다른 굵직한 요소들은 뭐가 있을까. 몇 달간 찬찬히 고민해 보니 지금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제 행복에는 다음 요소들이 중요했습니다.


1. 하고 싶은 일 또는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2. 날씨가 좋고 아름다우며 내가 마음이 가는 곳에서 사는 것

3. 마음이 맞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

4.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5.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


어느 하나 다른 것 보다 더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게는 이 다섯 가지 요소가 다 몹시 중요했습니다. 거기다 각각의 요소들은 독립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음이 가는 곳에 하고 싶은 일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또한 '마음이 맞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저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들어가는 요소들이었기에 더욱 복잡했습니다. 더 나아가 현실은 이상과 달랐기에,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모두 완벽히 만족하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걸 고려해 제 다음 여정을 정하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좀 더 확신이 드는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다른 요소들을 차순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먼저 '마음이 맞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 지난 3년 반 동안 안나와 만나면서 이 사람과 미래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또 이 사람과 함께 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프러포즈를 할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안나는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함께 할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역시 고려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함께한다는 거니까요. 안나는 가족 및 친구들과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것, 문화가 있는 곳에서 사는 것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안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 제가 중요하는 것들을 봤을 때 '어디서 살 지'를 가장 신중하게 정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살 곳을 정하는 건 잠시 미뤄두고 다음으로 다른 요소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하고 싶은 일 또는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4.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니, 먼저 제게 '좋은 친구들'은 누구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친구, 즉 믿고 의지할 수 있고 함께하고 싶은 친구를 구분하는 데에는 제 오랜 기준이 있었습니다. 바로 친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서슴없이 돈을 줄 수 있다면 그 친구는 제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친구였습니다. 세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서슴없이 돈을 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생각해 보니 한 대여섯 명 정도가 생각났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마음 같아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종종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는 걸 '함께 한다고' 하고 싶지만,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이곳저곳 떨어져 살았기에 여의치 않았습니다. 대신 종종 이유 없이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같이 꼭 얼굴 보고 술 한 잔 하고, 가능하다면 같이 여행을 갈 수 있게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대소사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거리가 어떻든 비용이 어떻든 그 자리에 있어주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하고 싶은 일 또는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 부분은 조금 더 유연하게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꽤 여럿 있었고 그중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향 화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나 아쉽게도 유기화학적 재능과 관심이 향 화학자가 되기에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향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을 때 그 방향마저도 꼭 절대적으로 해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시간 스스로를 알아가 보니 솔직히 저는 커리어에 목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하고 또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 '이 일이 아니면 안 돼!'라는 식의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곳'을 정하는 것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고 특정 장소에 여러 다양한 기회 중 제가 하고 싶고 또 즐길 수 있을 일을 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직업의 안정성이나 연봉 및 전문성 그리고 전망 등도 고려해야 할 테지만요.


그렇게 제 행복에 중요한 다섯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1. 마음이 맞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   ->   안나에게 프러포즈하기

2.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   ->   안나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오손도손 살기

3.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   종종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한 번은 꼭 만나 술 한 잔 하기. 가능하다면 같이 여행도 가기. 친구의 대소사에 돈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하기.

4. 날씨가 좋고 아름다우며 내가 마음이 가는 곳에서 사는 것   ->   안나랑 어디서 살면 좋을지 얘기해 보고 정하기.

5. 하고 싶은 일 또는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   어디서 살 지 정해지고 나면 그곳에 있을 다양한 기회들 중 마음이 가는 일 잡고 하기.


    행복의 요소라는 것이 분명 정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분명 행복의 요소 또한 지금과 달라지겠지요. 그래도, 그때가 되면 다시 내 행복의 요소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적고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간단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큰 비결을 하나 깨우친 거 같아 기뻤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