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에 무엇이 필요한가
8. Student Chemist at Unilever Deo R&D
정말 다행히도, 계획했던 것처럼 좋은 성적과 비약적으로 늘은 영어실력, 그리고 꼼꼼히 준비한 CV를 바탕으로 인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턴 과정이 비록 학과 코스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무조건 인턴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아닌 직접 그 기회를 만들어 내야 했기에 합격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매년 적지 않은 학생들이 끝내 인턴 기회를 못 잡고 코스를 바꾼다고 들었고, 때문에 합격 소식을 듣기 전까지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었습니다. 거기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저는 외국인 학생인지라 더 취약한 입장이었으니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 안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맴돌았었습니다. 인턴 자리를 무사히 잡은 것도 좋았지만, 가장 원했던 기업에 꼭 가고 싶었던 부서로 인턴자리를 잡게 되어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모두가 1순위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Unilever에, 지난 5년간 학교에서 누구도 못 갔다는 그 Unilever에, 웬 외국인 학생이 합격했다는 소식은 학과 전체를 적잖이 놀라게 했습니다. 나이 및 문화차이 때문에, 또 시간적 여유가 없어 학과 친구들과 그리 가깝지 않았음에도 여러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제게 말을 붙였습니다. Industry 코스를 담당하는 교수님 또한 몹시 놀라셔서는 한 동안 들뜬 목소리로 여기저기 제 얘기를 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인턴 과정이라는 게 아무래도 졸업 후 좋은 재목을 데려가기 위한 테스트 같은 느낌이 강했기에 졸업 후 비자가 보장되지 않은, 영국에 계속 남을지 아닐지도 모를 국제학생을 인턴으로 채용한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 확률이 낮은 배팅이라 기피했습니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다른 회사에서는 서류 심사에서부터 빠꾸를 먹었습니다. 같은 코스 내 다른 어린 친구들의 CV 보다 제 CV의 퀄리티가 월등하다는 것을 것을 알았기에, 서류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아, 내가 외국인이라 그렇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한 회사에서는 서류 통과 후 첫 전화 인터뷰에서 미처 외국인인 것을 몰랐다며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고 친절히 확인까지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고맙게도 Unilever는 달랐습니다. 영국 최대 기업임에도 영국인 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multinational company였고, 제 색다른 배경을 오히려 높게 쳐줬습니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온 제가 회사에 어떤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져다줄지 기대된다고 말해주면서. 더구나 제가 향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마침 향료 팀에서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 인턴을 뽑고 싶어 했는데 잘 되었다며 몹시 반겨주었습니다. 인생은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운이 중요할진대, 그 운이, 정말 큰 운이 제게 따랐습니다. 향이라는 좁은 길을 고집스레 말하는 게 사실 기회를 좁히는 짓인데, 그 고집에 꼭 맞는 기회가 마침 있었고, 덕분에 제 고집이 고집이 아닌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6월에 학기를 마치고 곧장 7월에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원해 붙은 곳은 Sheffield 옆 도시 Leeds에 있는 데오도란트 부서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한국인의 땀에는 악취가 나는 배설물을 만드는 미생물이 살지 않았고, 이는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데오도란트라는 것이 대충 뭔지 알기만 하는 정도에 살면서 한 번도 데오도란트를 써 본 적이 없는데, 데오도란트를 개발하는 곳에서 일할 거라니 참... 거시기했습니다. 1년 간의 인턴 생활은 정말 재밌고 행복했습니다. 존중과 다양성을 중요하게 하는 회사 문화에 확실한 워라벨, 거기에 참 사람 좋은 열 명의 인턴 동기들과 다니는 회사는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팀원들도 다들 배울 점이 많은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같이 도와가며 일하고, 서로 간식도 만들어 가져오고, 맛난 회사 점심에, 다들 할 얘기는 어찌 그리 많은지, 늘 화기애애해서는 출근하는 길이 늘 설렜습니다. 인턴이라고 무시하거나 잡일을 시키는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같은 동료로 동등하게 대우해 주고 중요한 일들을 믿고 맡겨줬습니다. 특히 저는 제 개인 프로젝트가 재밌어 남들보다 한두 시간 늦게 퇴근하기 일 수였습니다. 프로젝트는 새롭게 개발한 신세대 데오도란트에서 나는 묘한 꿈꿈한 냄새의 원인을 찾는 일이었는데, 어지럽게 쌓인 데이터를 정리하고 거기서 트렌드를 발견해 실험을 계획하고, 1년간의 실험을 통해 결국 원인까지 찾아내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일전에 다른 선임 연구원들 서너 명이 2년간 일하다 결국 원인을 찾는데 실패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혹시 인턴인 제가 fresher's eyes로 접근해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큰 기대 없이 제게 준 거였는데, 이 걸 풀었으니 회사에서는 크게 반기고 인정해 줬습니다. 뿌듯하고 보람찼습니다.
더없이 좋은 인턴 생활을 보냈음에도 졸업 후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향 관련 연구 프로젝트가 사실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곳 향료 팀의 주된 역할은 마케팅이었습니다. 트렌드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향을 향료 회사에 만들어 달라고 얘기하고 끝에는 향을 고르는 일을 하는 팀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정말 특수한 경우였고 거기다 인턴이다 보니 이 프로젝트 하나 만을 1년간 맡아하게 되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둘째, 호주에서 어렴풋이 느꼈고 이제금 깨달은 사실, 제겐 '어디에 사는가'가 '어떤 일을 하는가' 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일'에만 초첨을 맞추고 달려온 제게 1년 간의 리즈에서의 생활은 내가 행복함에 있어 사는 장소 역시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줬습니다. 리즈, 저는 이 춥고 어두운 도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호주 퍼스에서, 그리고 제주 한림에서 보냈던 행복했던 시간들이 자꾸 떠 올랐습니다. 여기 리즈는 그저 잠깐 스쳐 지나는 곳이라며 1년간 애써 나를 달랬습니다. 아무래도 제게 자연이 아름다운 곳, 날씨가 따사로운 곳,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사는 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런 장소가 주는 확실하고 큰 행복감의 맛을 본 이상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행복의 축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직업 그리고 사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