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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Dec 05. 2023

31. 파리에서 취업하기

2018년 4월, 파리


브뤼셀에서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취업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지, 나만의 것을 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벨기에에 있는 동안 나는 만화를 그리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결국 그게 이어져 개인 브랜드 프로젝트까지 하는 등 내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만 미쳐있었다.

어쩌면 조금 더 독립적인, 작가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유럽에서 공부를 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에 취업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파리에 오고 난 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두 친구와 만나 자주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파리에서 VMD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일하고 있던 두 친구는, 만날 때마다 회사 얘기를 하며 직장인으로서의 여러 생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었지만 일치감찌 타지에서의 사회생활에 뛰어든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취업에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나보다는 이곳 생활에 한 단계 더 깊이 녹아들어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사회 바깥에서 나만의 것을 하며 겉돌고 있기는 했지만 불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일 뿐, 생계에 영향이 없는 한 착실히 내 할 일을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지점에 다다를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며, 그들의 생활과 방식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날 아침, 믿고 있던 생계의 끈이 끊어져버렸다.

프리랜서로 계속 외주를 이어가던 회사가 갑자기 금전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일을 주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기약 없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으며 나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불안정성을 온몸으로 경험한 사건이었다.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기는 했지만, 파리의 물가와 집세는 찔끔찔끔 모아둔 돈이 우스울 만큼 매서운 수준이었고, 아직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중인 내 브랜드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당장 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석사까지 졸업해 놓고 한식당이나 카페 알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리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영향도 있었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곳에서 한번 제대로 된 일을 구해보자 싶었다. 내 미천한 불어실력을 가지고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늘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 기회에 또다시 성장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부랴부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회사들을 찾기 시작했다. 파리는 산업 특성상 패션 관련 회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나도 브랜드를 하며 패션에 꽤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난 패션 브랜드 위주로 지원서를 넣어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야 브랜드 대표님으로 대접받았지, 이곳에서는 그냥 개인 작업하는 백수일 뿐이었고, 프리랜서 작업 외에는 정식 경력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한국 못지않게 학연지연이 강한 파리에서 프랑스 학위도, 잘 아는 지인도, 끌어줄 교수도 없는 혈혈단신의 날 받아줄 회사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였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이제 생활비가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할 무렵, 기적처럼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마쥬(Maje)라는 브랜드였다. 그전부터 잘 알던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프랑스에서는 매장도 많고 꽤 유명한 브랜드인 듯했다. 그리고 그동안 이력서를 넣었던 수십 개의 회사 중 내게 연락을 준 유일한 브랜드였다.

HR 담당자에게서 온 메일에는 면접날짜와 시간, 면접 장소가 간략하게 적혀있었고, 나는 곧바로 연락을 줘서 고맙고, 꼭 시간에 맞춰 가겠다는 답장을 했다.


그리고 5월 2일, 그동안 취업이라고는 관심도 없던 나는, 프랑스에서 첫 회사 면접을 보러 마쥬의 오피스로 향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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