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충분히 믿을수 있기를....
결혼생활 34년째다.
그동안 늘어난 짐들이 너무 많다.
다 필요해서 구매한 것들인데 1년에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이를 어쩐다?
요즘 핫한 중고거래를 떠올렸다.
한번 해볼까?
그렇게 시작한 중고거래가 석달째 지속되고 있다.
어제 밤에 거래요청이 왔다.
딸아이가 예전에 선물로 받은 영한사전을 1만원에 거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거래요청자는 급하다고 하면서 나의 집 우체통에 넣어두면 새벽에 꺼내가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고 비닐에 싸서 우체통에 조심스레 넣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체통에 나가보니 사전은 없고 대신 작은 책자 2권이 들어있었다.
책자를 꺼내어 그 안을 들여다봐도 사전값 1만원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런 언급도 없이 사전만 꺼내가고 의미도 알수 없는 책자 2권이 들어있다???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마당 테이블에 앉았다.
어느새 내 머리속에는 도둑이니 사기니 이런 거친용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때 그가 두고간 책속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기쁜 일들도 만나지만, 슬프고 힘든 일들도 만난다.'
그렇다.
그와 나의 일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일들 중 하나일뿐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소나기가 내리는건 나를 젖게 만들어 곤란에 빠트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자연의 현상일 뿐...
정오쯤 되었을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고 너무 바빠서 연락할 시간이 없었노라고 하면서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다.
이런 저런 사정을 메세지로 주고 받으며 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행복하라는 말을 그에게 전했다.
그런데 왜 내가 더 행복한가.
마음이 가벼워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사물이 다 귀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자꾸 많아진다.
이를테면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바로바로 지적을 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등등
오늘 하루 겨우 나를 믿었다.
내일은 나를 충분히 믿을수 있기를 바라며 꿀잠을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