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i Jan 23. 2024

갑자기 거제도

지나치기만 했던 거제도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갑자기 거제도에 가보자는 동생의 의견에,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길을 나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그곳에서 무얼 할지 뭘 먹을지는 차를 타고 가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외도를 가보기로 했다. 말로만 들었지 가보지는 못했기에 그러자고 했고, 나머지 일정은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하였다.


  배를 타고 해금강을 거쳐 외도에 도착하여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구경했다. 남쪽이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나무들이 많아 신기했고, 편안한 운동화에 많이 걷고 수다도 떨었다. 어느 부부의 일생을 바친 덕택에 우리는 그저 눈호강만 하면 된다는 사실에 참 고마웠다.


  우리 자매들은 식물을 좋아하기에 '거제식물원'에 갔다. 온갖 희귀한 열대식물들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식물들 사이에서 즐기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속에는 우리도 함께 있었다. 또한 꿀빵이라는 것도 길거리에 줄을 서서 사 먹기도 하고, 전통시장에서 이런저런 건어물들을 사서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을 했다.


  숙소는 옛날집을 살짝 수리해서 사용하는 집으로, 어릴 때 우리 1남 4녀가 자랐던 느낌을 가져올 수 있는 형태의 집이었다. 불을 때서 방을 데우는 구들방이 있어 이불아래 발을 넣고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뜨끈뜨끈한 옛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나눴다. 함께 시간을 내지 못한 남동생과 여동생이 아쉬워 다음에 다 같이 오자는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약 15년 전으로 기억이 된다. 일흔 다섯 된 친정엄마와 여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대만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의 목적은 엄마가 나이가 더 들면 여행을 가기가 힘드니 가까운 곳으로 먼저 가보자는 취지였다. 시골에서만 생활을 한 엄마는 거대한 인천공항에 감탄을 했고,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비행기 안에서 음료를 서비스하는 것도 신기해했다. 나는 엄마에게 맥주 한잔 부탁해 볼까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비행기 안의 맥주는 아주아주 비쌀 것이니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스튜어디스에게 맥주 한잔을 부탁하는데 엄마는 내 옆에서 나의 허벅지를 찌르며 그만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맥주가 왔고 나는 엄마에게 속삭였다. "엄마, 공짜야"


  그 이후로 가까운 일본과 홍콩을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거동이 어려워지면서 해외여행은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내 엄마의 여행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창의력을 얻고 이런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처음 느껴보는 신세계 뭐 그런 것이다.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새로운 것이니 그저 감탄에서 감탄으로 끝나는 그런 여행말이다. 


  "음식에서 특이한 향이 나는데 무슨 향인지 모르겠네, 그런데 맛있다"

  " 저 돌멩이는 왜 구멍이 숭숭 나 있는고? 움푹 파인 저 돌덩이는 절구통으로 사용하기 좋겠구먼"

  " 여기가 어디쯤인고? 집으로 갈 때는 열차 타고 갈 수도 있으려나"


  어린 날의 기억이다. 너무 추운 겨울날 새벽어둠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잠결에 대문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나뭇짐이 마당 한편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새벽에 칼바람을 뚫고 나무 한 짐을 해오신 아버지, 밤새 식어버린 구들장을 데우는 엄마, 그 엄마가 내어준 따뜻한 물에 세수를 하시는 아버지와 도란도란 말씀을 나누시는 소리는 아직도 내 두 귀에 생생하다.


  예순셋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신적이 없어 엄마라도 해외여행을 경험하게 하자는 의미로 마지막 홍콩으로의 여행은 무리였다. 힘에 부쳐 겨우 따라다니는 발걸음을 두고 과연 이것이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아쉬움을 채우려고 엄마를 무리하게 여행의 길에 내세웠던 것은 아닐까 지금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 부모님에게서의 여행은 그저 존재하는 사치품,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기호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 부모님은 행복해했다. 젊은 날 가끔씩 동네마을에서 함께 가는 국내여행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 하셨다. 


  나의 부모님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저 지문이 닳도록 일을 하고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우리가 이곳 거제 어느 곳에서 즐겁게 여행을 하고 있는 것도 내 아버지와 엄마의 여행의 일부라고 보면 될까? 오늘 이 밤은 오롯이 부모님의 이야기로 긴 밤을 보내야겠다.


이전 01화 요 며칠 동안 번 돈 구경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