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하니 돈이 벌어지네요.
5년간 살던 주택을 두고 떠나야 할 날이 두 달 정도 남았다. 이사를 가는 일은 어렵기도 하지만 쉽기도 하다. 예전처럼 직접 짐을 싸고 풀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이사를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뭐든 '적당히'를 좋아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혼해서 여러 번 이사를 해 본 경험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면,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너무 많다. 아까워서 못 버리고, 의미가 담겨있어 보관해야 하고, 언젠가 사용할 것 같아 또 가지고 가고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삿짐차의 크기는 자꾸 커져만 간다. 지금 바로 매의 눈으로 집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즘 중고거래하는 곳이 있어 즐겨 이용하고 있다. 먼저 주방으로 갔다. 장을 열어보니 사용하지 않고 먼지만 가득 안고 있는 찻잔들이 즐비하다. 가엾다. 한 번도 러브콜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이 찻잔들을 나는 깨끗한 흰 광목천을 테이블 위에 깔고 예쁘게 찍고 또 찍어 중고거래를 시작했다. 그다음은 옷장을 열어서 안 입고 옷걸이에만 붙어 있는 옷들을 정리하고 그리고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만 놓여 있는 작은 소품들을 꺼내 놓았다.
수시로 거래요청 소리에 나는 신이 났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예쁜 쇼핑백에 담아서 그들에게 건네주면 내 손안에 돈이 들어온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나의 기분을 아주 좋게 만들어 준다. 이 추운 날씨에 한참 동안 나의 물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 듣고 난 후 질문도 한다. 나의 고객은 대부분 육십 대 중후반이므로 서로 쉽게 통한다. 그저 물건을 전해주고 돈만 받고 오면 되지만 사진으로만 본 물건이라 혹시 다를 수도 있으니 확인도 시켜줄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처음 보는 사이지만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번 돈이 저 위에 사진속에 담겨있다.
우리 식구들은 날더러 '중고거래의 신'이라고 부른다. 좀 잘 성공시키는 편이다. 그건 나만의 중고거래의 성공비결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저렴한 가격으로 내놔야 한다. 아무리 미사용이라 하지만, 그건 사고자 하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일이므로 대부분의 '미사용'이라 적어놔도 '사용'이라고 읽는다. 물건의 가치는 본인에게나 높은 것이지 상대방에게는 그저 중고물품이고 잠시 필요해서 사는 것이라는 의미 그 이상은 아니다. 그다음은 상품 설명을 할 때 내가 나의 물건에게 부여한 의미를 설명한다. 짧고 와닿게 그리고 친절하게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찔러보기 없기'에다가 무서운 이모티콘을 붙인다든지, '사진 잘 보고 판단하고 질문은 사절' 또는 '아무 때나 메시지 보내지 마세요 제발 좀'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저 보기만 해도 싸한 느낌이 온다. 당연히 물건이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물론 거래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는 나도 기분이 안 좋아진다. 다행히도 약속장소가 커피숍 주차장이라 나는 따뜻한 카페라테 한잔을 마시며 마음을 달랜다. 일부러 커피 마시러 나오기도 하니까 이참에 잘 되었네 생각하면 그뿐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 보다 더 많다. 불편한 것보다 편한 것이 더 많다. 맛없는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이 더 많다. 이래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하지 않는가. 내일 또 한건의 중고거래 약속이 있다. 혹시 취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래 성공이 더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