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끌어주는 힘

끌려가다 보면 레벨업

by 나늬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다.

유독 내가 더 그런 것 같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을 때가 더 많다.


로웬펠드는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에서 말한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것처럼 창의적 표현도 모두 다르다. 이런 생각이 교육자나 심리학자의 마음에 있는 것처럼 미술가의 마음에도 있을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어린이를 위한 미술교육에서 우리는 그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제는 내가 미술교육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어린이의 작품이 한눈에 보아도 서로 다를 때 희열을 느낀다. '아! 정말 미술교육은 매력 있어!'

어린이 디자인 교육프로그램 <꽃병> 작품 / 모두 다른 꽃병들

미적 인식에 대한 내용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 뭉크의 작품을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이 작품 속에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라고 3명씩 짝을 지어주셨다. 뭉크의 대표적인 작품인 <절규 The Scream>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작품이었다. 짝이 된 다른 두 사람도 처음 보는 작품이라고 했다. 작품 속 할아버지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 서 있는 자세가 힘이 없어 보인다,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려고 한 것 같다 등등.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배경 속에 할아버지가 아니라 어린이가 있었다면, 이렇게 슬프고 어둡고 마지막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까? 내 말을 듣고 눈이 동그래지며 '그럴 수도 있겠다! 작품 속 사람이 달라지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라고 짝의 한 사람이 말했다. 또 자신은 침대 위의 침대보 패턴이 음산한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내가 좋아하는 패턴이라, 나는 예쁘다 생각했는데.'라고 말하곤 웃었다. 그때부터는 더 신나게 작품 속 보이는 것들을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다르게 보는 그 시각이 좋은 자극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이야기한 후, 교수님께서 서로 다르게 생각한 어떤 부분들이 있었는지 물으셨다.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 나니 같은 작품을 보고 다르게 생각했다는 점이 다시금 신기했다. 그리고는 기대되었다. 과연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의 정답은 무엇일까?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자신의 고정된 시각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타인이 필요하다'라고. 그리고는 다음 수업 내용으로 넘어가셨다.

내 머릿속은 띵- 작품 해석에 대한 답을 원했으나, 답은 없었다. 미적 인식은 사람의 비사실적이고 비객관적인 반응이니까 당연히 없어야 했다. 그럼에도 답을 갈구했던 어쩔 수 없는 나란 사람. 그리고 그다음에 든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기에 내가 볼 수 없었던 면을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 특강으로 만난 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떠올랐다. 좋은 대화는 개방성에 놓여 있으며 대화 참여자들이 자신의 선입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과 소통함에 있어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셨다. 처음 본 작품이었기에 선입견이나 사전 정보가 없었고, 그래서 서로의 다른 해석에 대해 마음껏 수용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아니야. 이 부분은 이런 거야.'라고 말했거나 속으로 생각하며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계가 있고, 나는 그 경계가 더 확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이 분명하다. 나는 어린이, 미술, 교육, 디자인, 전시 등에 관련한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키워드의 일은 나의 영역 밖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시작조차 안 할 것 같은 행동을 할 때는 그런 행동을 끌어주는 힘이 있을 때이다. 그 힘은 주로 내가 믿는 사람, 가족, 동료, 친구로부터 나온다. 특히 20년을 봐온 친구가 나와 다른 성향과 관점이 있을 때 끌어주는 그 힘은 더 대단하다. 끌려가듯 그렇게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경험치가 쌓인다.

혼자라면 하지 않을 것 같은 소소한 도전의 기록

그렇게 나는 친구가 끌어주는 힘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은 쌓여 소소한 도전에 대한 용기를 주기도 하고, 지친 하루에 대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사실 브런치에 <미술교육을 배우는 나의 에세이일 뿐>이라는 글을 연재하게 된 계기도 친구의 끌어주는 힘이 작용했다. 박사 과정 강의 중에 느꼈던 것을 친구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했고, 그런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친구의 반응에 나는 더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문득 말했다. "이거 브런치에 글로 적으면 어때?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라고. 사실 브런치는 어린이 디자인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교육콘텐츠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었다. 아무래도 교육 프로그램은 실행해 본 후에 글을 적을 수 있기에 정기적으로 업로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에세이라면 내가 부지런히 쓰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박사 과정 첫 강의 수업에 대한 내용을 글로 잘 남겨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렇게 글을 연재하기 시작해서 이번 글이 벌써 8화가 되었다. 앞으로 2화만 연재하면 그렇게 또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이 시작은 친구의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은 비고츠키(Vygotsky)가 제시한 아동의 인지발달 이론이다. 비고츠키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작용에 영향을 받아 성장하는 사회적 존재로 보고, 아동의 인지 발달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보다 뛰어난 부모, 교사,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사고와 성취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어린이로부터 출발하는 미술교육> 책을 보면 '비평적 읽기'라는 개념이 있다. 비평적 읽기 과정은 그림을 그린 어린이와 그림을 바라보는 해석자가 된 어린이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해를 나눔으로써 보다 더 깊은 이해에 이르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상징을 수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신만의 주관적인 표현과 해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진정한 이해에 이르고 자신의 주관성이 살아 있는 창조적이면서도 소통이 가능한 표현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적힌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는 어린이 디자인교육으로 시계를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친구의 의견을 듣고 보완된 스케치

사진 속 좌측 사진은 블랙홀 모양으로 표현한 첫 번째 디자인 스케치다. 친구들끼리 서로의 디자인 스케치를 보며 이야기할 시간을 주자, 어떤 아이가 가운데 사진처럼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표현하면 더 블랙홀 같은 느낌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스케치를 수정한 사진이 우측이다. 자신과 다른 시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에 적용해 보완한 것이다.


어린이들과 미술 교육을 진행할 때 자신만의 작품에 몰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더 궁금한 작품은 무엇이니?"라고. 궁금한 작품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시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그 힘을 느끼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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