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같은 선생님이라고 했다!

나를 키워주는 어린이

by 나늬

왕복 140km를 달려가 어린이들과 디자인교육을 했다. 설레던 그 첫날, 한 어린이가 나를 그려줬다.

그리고 적혀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1004(천사) 선생님을 만났다. 기분이 좋다.'라고.


뜨거웠던 로웬펠드에 대한 애정을 뒤로하고, 그 이후의 미술교육 흐름을 따라가 아이스너를 마주했다. 로웬펠드가 표현중심 미술교육이었다면, 아이스너는 학문중심 미술교육(Discipline-Based Art Education)이다. 아이스너의 '새로운 눈으로 보는 미술교육' 책의 첫 장은 '미술은 왜 가르치는가?'였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이스너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미 로웬펠드의 이론만으로도 내 마음에는 미술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미술교육의 정당화를 다시 논해야 하는 거지?

무엇보다 학문중심 미술교육에서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했고, 이 책을 반 이상 읽고 난 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당연하게 작성하는 지금의 계획안이 없었던 시대였다면?


아이스너의 책을 읽고 요약한 후,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다. 내가 발표할 장은 '미술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미술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미술교육에서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콘텐츠 기획 회사에서의 오랜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도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하는 나에게 교육과정, 교사의 역할, 평가에 대한 부분은 친숙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열의를 가지고 과제에 임했던 것 같다.

아이스너는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조직된 체계적인 활동이다."라고 정의한다. 지금은 너무 익숙한 교육과정이라는 단어지만, 만약 이 전에는 전혀 없었던 개념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이스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문중심 미술교육에서 제시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학문적 영역으로서의 미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스너는 교육과정에서 수업목표와 더불어 표현목표의 개념도 제시했다. 평소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목표 설정이었던 나에게 표현목표는 매력적이었다. 목표를 명확하게 해야 교육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목표는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목표였던 것이다.

그럼 표현목표는 무엇일까? 이건 학습자, 즉 어린이 개개인의 목표이다!!

아이스너의 표현목표 개념을 통해 학습자인 어린이 개개인마다의 목표까지 고려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어린이들마다의 성장과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체계화된 교육과정이 마련되었다면 다음은 교사가 중요하다. 아이스너는 신뢰성 있는 관계와 전문적 능력을 언급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교사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로 3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시간은 흘러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교육콘텐츠 회사에 다닐 때였다. 유치원 교사로 만났을 때 6살이었던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올해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진서에게 만나보고 싶은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선생님이라고 해서 전화드렸어요. 아직 번호가 그대로여서 너무 다행이에요." 그렇게 만난 진서는 어느덧 5학년이 되어 있었다. 내 눈에 진서는 6살 모습 그대로 귀여웠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를 잊지 않고 가장 만나고 싶은 선생님으로 찾아줬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교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어린이의 성장과정 속에 깊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꼈다.


내 기억 속 어릴 적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면 즐거울 것 같다는 이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실제로 어린이들과 함께 해보니 즐거움 이상이었다. 내가 어린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린이로부터 배우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어른이 되어 갇혀버린 고정관념이나 시각을 전환시키는 건 늘 어린이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늘 소중하고 의미 있다. 기획자로 일하지만, 어떻게든 어린이를 직접 마주하고 소통하고자 애쓰는 부분도 그 시간이 나에게 주는 성장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교사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면, 어린이를 만나며 성장하는 교사이지 않을까.


아이스너가 말한 교사의 능력 중 '모방'의 영향력이 있다. 교사가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는 행동 자체가 교육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나의 작업이 내가 교육으로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또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와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들과의 교육, 이 두 가지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 있다니, 미술교육을 더 배우기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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