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받은 괴테

뉴턴의 오류를 바로 잡으러 평생을 바치다

by 강하단

괴테는 자신이 받은 위대한 유산 덕분에 문학적 그리고 과학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럼 그렇지 무언가 엄청난 유산을 받았구나 하는 순간, 반전이 있다. 괴테가 말한 위대한 유산은 “뉴턴의 오류”였다.


뉴턴은 1727년 사망했고 괴테는 1749년에 태어났다. 괴테는 위대한 과학자 뉴턴을 학교에서 배우고 여러 저술을 읽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을 가지게 되었을 때 뉴턴의 과학법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그리고 평생 뉴턴의 오류를 수정해 후대에 남겨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 석사과정일 때 영국에는 흑사병이 유행했다. 그 때 그의 나이 23세였다. 학교가 휴교 하자 고향집으로 가 3년여를 지내면서 유명한 뉴턴의 노트에 그의 이론들을 정리한다. 이후 그의 만유인력, 미적분학, 광학 이론도 이 당시 그의 노트에 정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뉴턴의 노트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 시기 유명한 사과 일화도 있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빛을 관찰해 이후 그의 광학과 색깔 이론의 토대를 잡았다고 한다. 대학에 돌아와 연구를 이어갔고 27세가 되던 해 교수가 된 후 그의 출세작 프린키피아(1687년)를 45세가 되어 출간했다. 인생의 비교적 후반기(62세) 광학(1704년)까지 출판함으로써 뉴턴은 위대한 업적을 완성했다.


괴테의 신경을 건드린 뉴턴의 업적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광학이론이었다. 데카르트에 관심이 많았던 뉴턴은 데카르트의 프리즘 빛 실험을 참고했다. 그리고 수학과 물리학으로 빛 이론을 발전시켜 광학 이론을 완성한 것이다. 데카르트 프리즘 실험 만큼이나 그의 철학을 좋아한 뉴턴은 빛을 철저하게 관찰자와 대상으로 분리해 연구하고 이를 이론으로 완성했다. 이 말은 관찰자와 관찰 대상인 빛은 당연히 독립해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대상으로 존재하는 빛이 있고 이를 알아채는 관찰자가 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dualism)”은 뉴턴 광학이론의 기초를 제공해 준 셈이다.


괴테는 뉴턴의 빛에 대한 이원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은 확고해 뉴턴의 광학에 대한 오류는 후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기에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괴테는 관찰자는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색을 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백색광도 투명한 빛의 경계를 이루는 색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즉 빛의 모든 것은 색을 통해서만 관찰자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색은 망막을 통해 신경세포로 연결되고 뇌로 신호가 보내져 사람은 비로소 색을 인지한다. 색과 빛을 온전히 존재하는 독립 대상으로 해석해 이론을 펼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과학적 행위라고 괴테는 판단했다.


괴테는 뉴턴의 광학이론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평생 연구한 결과를 그가 61세 되던 1810년 5월 18일 발표한다. 괴테의 색채론이란 책이다. 25살 젊은 나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낭만주의 소설을 발표한 괴테가 평생 숙제로 생각했던 뉴턴의 오류를 “색채론”이란 책으로 바로 잡으려 노력한 것이었다. “괴테와의 대화(요한 페터 에커만)”란 책을 통해 괴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괴테는 훗날 그의 색채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분명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과 같이 말한다. 그 정도로 괴테의 색채론은 읽기 힘든 이론과 설명이 가득하다. 하지만 뉴턴의 이원론적 빛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고, 색은 관찰자인 사람과 분리될 수 없다는 괴테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렇게 이해가 힘든 것도 아니다. 괴테의 색채론에는 뉴턴의 빛은 물리학적 색으로 정의하면서 그 외 화학적, 생리학적 빛을 추가해 광학이 과학과 철학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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