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에서 개념으로 가는 길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것이 특별할 것은 없다. 그 속에 있는 지식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라 굳이 읽을 필요 없다는 괴테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읽어야 직접 깨달을 수 있으니 괴테의 충고가 얄밉기는 하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인생에 꼭 한번은 읽어야 한다는 숙제를 학창시절에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그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읽은 친구들도 있었다. 통과의례 같이 느껴졌다. 인생은 기니까 언젠가 읽으면 되지 생각했었다. 학창시절 몇번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음 몇 쪽을 읽다 포기해 버렸다.
2011년 40대 1년을 스페인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여러 준비물 중에 영문판 순수이성비판을 포함시켰다. 그 해 난 마침내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읽을 수 있는 책이었구나.
머리 좋은 사람들이 정리해 준 지식을 굳이 알 필요 없다고 칸트는 충고했다. 칸트하면 떠오르는 선험적 지식, 오성, 데카르트하면 알아야 하는 코기토, 자크 데리다하면 꼭 따라붙는 해체주의와 같은 정답있는 지식들을 굳이 알 필요없다고 칸트가 속 시원하게 보증해 주었다. 대신 일상의 순간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밑바닥 기초부터 하나씩 일러주었다.
칸트를 읽어야 칸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칸트가 목 터져라 강조했다. 꽃, 사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누구나 관찰할 수 있지만 관찰하지 못하는 원인은 사실 자기 자신이라고 칸트는 얘기해 준다. 제대로 관찰하면 생각하고 이해해서 개념으로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개념이 곧 지식이 된다.
칸트는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 노란색 빛, 위대한 사상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속에 이미 꽃의 아름다움, 노란색 빛, 위대한 사상이 들어있어 이것을 끄집어 낼 뿐이라고 말한다. 관찰은 자신의 외부와 내부를 맞추는 행위였던 것이다. 사물을 만나 관찰하려면 사물을 보고 자신의 내부에서 사물과 같은 성질을 끄집어 내는 것이다. 노란색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한 이유가 여기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관찰하는 법을 배웠으니 칸트가 대단하기는 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어려운 지식, 모든 것을 아는듯 철학자와 철학 사상들을 줄줄 말하는 사람들에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 묘한 자신감에 현란한 지식의 말장난을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게 된다. 철학자의 책을 모두 읽을 필요도 없고 사실 모두 읽을 수도 없다. 어떤 철학자 책의 한 쪽을 읽더라도 그 철학자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인생 모두를 옆에서 함께 지내야 그 사람을 만난 것인가? 한 순간을 함께 해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순간 속에 영원이 있기 때문이다.
칸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칸트를 통해 내 자신 속에 가득 차 있던 세계 속 온갖 벽들을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벽이 허물어지면 세상이 열린다. 두번 읽으면 더 많은 벽을 인생에서 걷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