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400계주 마지막 주자는?

과학자 고도를 기다리며

by 강하단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으로 이어진 위대한 발견과 혁명적 사고는 인류를 성장시키는 차원 이상으로 여러 단계를 올려놓았다. 그 시대 권위와 통념을 극복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이제 세월이 흘러 시대를 앞서 인류를 이끈 3명의 위대한 과학자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금기시 되고 있다. 이들이 환생한다면 자신의 위치에 적잖게 놀랄듯 하다. 1543년 ‘천체의 회전’ 지동설, 1637년 ‘방법서설’ 이성, 1704년 ‘광학’ 빛과 색 이론을 통해 혁명적 과학과 철학의 진보를 이뤘지만 이로 인해 인류는 다른 차원의 벽과 마주하게 되었다.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던 사회에 사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하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과학적 사실을 목숨을 걸고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분명 용기있는 천재 과학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주의 진리를 온 천하에 드러낸 혁명과도 같은 이 사건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초래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데, 우리 내면과 우주 모든 움직임의 연결 고리를 포기한 것이다. 천체 우주의 회전, 주위 사물의 흐름과 순환이 인간 내부 움직임과 연계하여 관찰하는 것을 중단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영국드라마 시리즈, '셜록(2013)’을 보면 명탐점 셜록홈즈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람들은 이를 신기해 하기도 하고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 셜록의 반응은 간단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신의 세계와 무관한 그 어떤 현상도 무의미하다는 셜록의 이 말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과학법칙과 원리라고 하더라도 개인에게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유로운 과학적 사고의 장벽이라는 또 다른 믿음이다. 천동설이란 잘못된 믿음이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 막았다면 관찰자와 분리해서 우주 현상과 모든 사물을 과학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자유를 구속하는 장벽이다. 이후 인류는 자신을 사물의 움직임과 연결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으니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엄청나긴 했나 보다.


지식과 진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생각은 오직 이성에 기반해야 한다고 데카르트는 당시의 권위에 도전하는 주장을 했다. 왕, 교회, 기존 철학과 과학 진리라 하더라도 권위를 가지고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면 모두 거부되어야 하고 오직 이성에만 의지해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권위가 이성으로 교체되는 것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여기서도 부작용이 발생한다. 인간 이성의 등장은 관찰자라는 주체와 대상인 객체가 엄격하게 분리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데카르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관찰자 내면 움직임이 우주의 움직임과의 연결이 끊겨 버린 것과 유사하다.


1번 주자 코페르니쿠스, 2번 데카르트를 이어 달린 주자는 뉴턴이었다. 뉴턴이 1704년 생의 후반기 발표한 광학이론은 빛의 이동, 굴절과 회절, 색 이론 등으로 이어져 양자역학, 물리화학, 분석화학 등 이후 과학분야 여러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뉴턴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광학이론도 예외없이 부작용을 만들었다. 과학의 빛과 색은 인간 내면이 가진 색과의 완전한 분리를 뉴턴 광학이론은 고착화 시킨 것이다. 뉴턴의 물리학으로 보면 노란색은 빛이 분절되어 생겼지만 이를 인식하는 것은 관찰자가 노란색이란 존재를 가졌기에 관찰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자신의 광학이론만 빛의 과학이라고 뉴턴은 주장했다고 괴테는 그의 색채론(1810)에서 아쉬워했다. 괴테의 신비론이라 치부해 버리지 말고 색채론 속 새로운 관점의 괴테의 과학을 만나보길 꼭 권하고 싶다.


과학혁명 계주를 달려온 위대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 데카르트, 뉴턴은 다른 계주팀을 추월하면서 시대를 앞지르는 과학이론을 펼쳤다. 그들의 맥락은 인간과 우주의 분리, 주체와 객체의 분리, 외부 현상과 마음의 분리, 즉, 관찰자와 사물의 분리였다. 시대의 잘못된 믿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위대한 과학자의 도구적 방편이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 예기치 못했던 벽을 세운 것이다.


위대한 과학혁명 마지막 계주 주자는 관찰자와 사물의 재결합을 이루는 시도이길 바래본다. 이유를 굳이 말한다면 그것만이 과학의 회복이고 오직 그것만이 혁명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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