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vs 나침반 방향
세상을 송두리채 바꿔버린 3명의 철학자가 있는데 흔히 “3H”라고 한다. 헤겔, 후설, 하이데거인데 이들의 이름이 모두 ‘H’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철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그렇다고 하니 뚜렷한 근거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철학을 전공하지 않고 독서하며 독학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를 독서에 의존해 짐작할 수밖에 없는데, 3H 이전 세상은 플라톤의 윤리가, “3H” 이후에는 이들이 우리의 윤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플라톤의 윤리는 ‘이데아’가 현실 속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듯 보인다. 플라톤을 깊이 있게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우린 ‘공자님’ 하듯이 세상 사람들에게 플라톤하면 통하는 그 무엇이 있는데 바르게 생각하고 행위하면서 사는 절대 기준 같은 게 있는거다. 플라톤의 윤리는 도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현실 속에 이데아가 자리 잡고는 자신의 잣대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간섭하면서 구체적으로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3H” 철학자의 윤리는 플라톤과 결이 다른듯 보인다(독서와 독학, 몇몇 철학 강좌에 기반). “3H 철학자들”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종이 도화지 들고 세계로 나가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다시 도화지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구김도 아무런 문양도 없었던 종이에는 구김이 생기고 흔적도 생긴다. 세계로 나가 한바탕 놀고 난 후에 치운다고 치워도 종이에 생긴 구김과 흔적은 어쩔 수가 없다. 원래 종이로 돌아가지 못한다. 여기에서 “3H 철학자”의 윤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빈 종이 들고 세계로 나갔다가 다 놀고 나면 종이 위에 놓인 모든 것을 치우고 다시 돌아와 구김이 생겨버린 종이를 오롯이 들고는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윤리라고 말하는듯 하다.
플라톤은 세계 속에서 안전하게 서로 행복하게 지내려면 기준이 되는 기둥을 세우고 그 주위에 선을 긋고는 선을 넘지 않는 지역에서만 놀아라고 추천하지만 “3H 철학자”는 기준이 되는 기둥과 안전 지대를 구획짓는 선도 없으니 자신만의 마음 도화지 종이를 들고 그 종이에 하나씩 생겨 나가는 흔적과 구김을 나침반 삼아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