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술을 생각하다

선택 앞에서 흔들리던 마음


응급실에서 처음 받은 검사로
자궁 바깥쪽에 9센티미터 크기의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낭 수술을 위해 입원했고,
퇴원 전 다시 받은 산부인과 검사에서는
자궁 안쪽에도 혹이 있다는 결과를 들었다.

안쪽과 바깥쪽의 혹을 둘다 제거하기 위해서는

개복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개복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낭 수술을 막 끝낸 몸으로
곧바로 또 다른 수술을 결정하기에는
회복이 먼저 필요했다.
그래서 자궁 수술은
적어도 몇 달 뒤에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지인을 통해 순천향병원 진료를 추천받았다.
자궁 수술로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 곳이었다.
담낭 수술 후 회복은 빠른 편이었고,
몸이 크게 힘들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음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개복수술만 아니면 좋겠다.


몸의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배는 늘 묵직했고,
화장실을 자주 가야 했으며,
생리통은 점점 심해졌다.
이 상태로 계속 살아가야 할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2월 초,
순천향병원의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혹만 떼어내는 수술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차트를 살펴본 뒤
조용히 다른 선택지를 이야기했다.


임신 계획이 없다면
자궁 수술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혹만 제거하는 수술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재발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자궁 수술도 혹만 제거하는 수술도 복강경으로 가능하고,
난소를 남기면
호르몬 문제도 거의 없다는 설명이었다.


설명은 담담했지만
그 선택은 내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이를 더 낳을 계획은 없었지만
‘자궁이 없어진다’는 말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 무렵,
12월 생리통은 유난히 심했다.
진통제를 하루에도 몇 번씩 먹어야 했고,
한 달의 많은 시간을
통증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생리도 없고,
생리통도 없고,
재발도 없을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통증 없이 살아가는 나의 삶을
처음으로 그려보게 되었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몸에 아픈 곳이 없는 상태가 되고 싶었다.

마흔넷의 마지막과
마흔다섯의 처음을
수술과 회복으로 보내게 되더라도
그 이후의 시간은

고쳐진 몸으로
앞을 향해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자궁 수술을 선택했다.

다행히 개복이 아닌
복강경 수술로 진행할 수 있었고,
1월 중순,
약 며칠간의 입원 일정이 잡혔다.

수술 이후를 위한 준비도
미리 해두었기에
마음은 조금 차분해졌다.


그럼에도
자궁이 없는 여자가 된다는 생각은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감각,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
상실감과 자괴감이
조용히 마음에 머물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그 감정은
한동안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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