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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Jul 27. 2024

글 님, 나가십니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던 중, 친구가 최근에 점을 봤다고 했다. 아무한테 말 한 적 없는 가족사를 다 맞추고, 성향이나 성격도 다 맞췄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듣다가 살짝 비웃었다. 야, 원래 과거는 잘 맞춰, 미래를 맞춰야 찐이지. 그런데 친구는 그 사람이 직장, 연애, 결혼, 독립에 관해 괜찮은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솔깃해져서 물어봤다. 거기 어디야? 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주차할 곳을 찾다가 예약 시간에 20분이나 늦어버렸다. 여러 번 죄송하다고 했는데 부드럽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점집 같지 않은 평범한 주택이었다. 간판도 없고, 깃발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었다. 사실 어디서 뭐를 배운 사람인지도 모르고 친구 말만 듣고 찾아간 거다. 우리는 탁자를 두고 앉았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려줬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 덕에 아빠 사업이 굴러간다는 사실을 맞추고(정확히는 엄마의 헌신), 내가 모은 돈이 없는 것도 맞췄다. 궁금한 걸 물어봤다. 재취업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서도 오래 일 못 할 거다. 시 소설 관심 많은데 어찌해야 하나? 취미로만 접근해라 전업작가로 성공 못 한다. 그러면서 나보고 계속 돈 벌라고 돈 버는 게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내가 돈 모으는 데 관심 없고 현실에서 붕 뜬 채 사는 게 보였나 보다. 하하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너 글 써도 된다, 였다. 그런데 아니라고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해서 아니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줄 몰랐다. 백일장 한 번 나간 적 없고,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은 적도 없고, 평소에 메모도 안 하면서 글 쓰고 싶은 충동이 올 때만 깔짝대며 쓰는 사람은 뜨끔하다. 이제는 그만 놀고 재취업을 위해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데 계속 시집만 읽고 있다.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화병이 올 것 같다. 글을 들여다보는 일, 글을 꺼내는 일, 둘 다 즐거운데, 글에 생계를 걸면 힘들겠지. 매력적인 글을 쓸 능력이 없는 게 맞는 거겠지. 작가는 타고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도 포기가 안 돼서 요즘 매일 끄적거린다. 글이 내 몸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하는데 막을 방법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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