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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로 본 1인분 논쟁, 1인분의 기준은?

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두 번째 이야기 

by 스테디김 Mar 04. 2025

주말의 저녁식사는 보통은 치킨이다. 제이의 인생 낙이 치킨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2만 원 안팎으로 인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니, 이보다 소박하고 가성비가 좋은 인생낙이 또 있을까?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한데 말이다. 인생의 낙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치킨을 좋아한다면 얼마든지 치킨을 시킬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온전한 기쁨을 줄 수 있으니.      


하지만 오늘은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제이가 주중에 몰래, 그것도 혼자 한 끼 식사로 1인 1 닭을 했기 때문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주중에는 치킨을 먹지 않기로 약속했건만. 그놈의 인생의 낙인지 뭔지를 핑계 삼아 혼자, 그것도 몰래! 먹은 것이다. 


어쨌든 주중에 먹었으니 오늘은 뭔가를 해 먹기로 했다. 일단 불을 피우면 요리를 한 것이니 불을 피우는 행위를 하자. 그러던 차에 찬장 구석에서 몇 개월간 보관 중인 스파게티면이 발견되었다. 보통 스파게티 면은 찬장 안쪽의 구석에서 그 존재가 잊히곤 한다. 그리고 1년 후쯤 발견되면 그때가 스파게티를 해 먹는 날이다.      


우리는 소스를 사러 다 함께 아파트 상가의 마트로 향했다. 스파게티 소스는 마침 세일을 하고 있었다(어쩌면 일 년 내내 이런 세일 표시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마토소스는 600g에 4,800원으로 마침, 세일을 하고 있었다. 장을 봐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용량에 이 가격의 토마토소스를 집어 들지 않는다면 집에 와서(아니 오는 내내도) 밀려오는 후회 속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다 급성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오호, 4,800원에 4인가족 식사를 끝낼 수 있겠군!      

나는 급성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다.       


마트에 오길 잘했어. 역시 발품을 팔아야 싸게 살 수 있다니까.


그런데 제이가 다가오더니 토마토소스를 자신이 좋아하는 까르보나라소스로 바꾼다. 까르보나라 소스는 430g에 7,500원. 한 병으로는 부족하니 두 병을 사서 순식간에 15,000원으로 업. 게다가 나는 텁텁한 까르보나라소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기 위주로 고를 줄 알았어. 

에라, 그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소스 골라야지.      


내가 좋아하는 알리오올리오 1인분을 추가구매했다. +3,500원  

집에 통밀 파스타면이 있다고 하니 맛없다며 제이가 일반 파스타면을 구입한다. +3,000원 

결국 4,800원에 한 끼 식사를 하려던 계획은 20,000원을 넘겼다.      


괜히 왔어.


계획에는 없는 두 종류의 파스타소스와 면 구입과 더불어 종량제 봉투 가득, 계획에는 없는 많은 식량(세일하는 과자, 세일하는 핫도그, 세일하는 만두 등등..)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제이는 스스로 자신과 아이들 몫의 까르보나라를 요리하겠다고 한다. 두 개의 팬을 오가며 정신없을 뻔했는데 나로서는 그야말로 땡큐. 하지만 제이는 역시 그 쉬운 스파게티 조차 할 줄 모른다. 자신이 하겠다고 말하고 난 뒤 계속 물어본다. 냄비는 어디 있어? 면을 먼저 삶는 건가? 몇 분 동안 삶아야 해? 팬은 어디 있어? 소스는 익힌 면에 그냥 생으로 넣으면 되나?  

...     


제이의 이런 '사람 귀찮게 하며 스스로 하는 요리'는 애초에 인원 계산부터 잘못되었다. 우선 첫째 아이는 감기 기운으로 입맛이 없다고 한다. 그럼 실제 먹을 인원은 먹보 라인인 제이와 둘째 아이뿐. 그런데 둘째도 간식을 잔뜩 먹어 그리 배고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제이는 파스타 봉지를 뜯어 면 전체를 넣는다. 뜯긴 봉지에는 분명 5인분이라고 적혀 있다. 내가 너무 많다고 2/3만 넣으려고 했지만 제이에게는 어림도 없다. 그러면서 사극에 나오는 대감영감처럼 역정 비슷한 것을 냈다.       


"뭐 하는 짓이야? 다 넣어야지!"     


제이는 음식을 시킬 때도 항상 이런 식이다. 식당에 들어갈 때는 분명 소인 2명을 포함한 4인가족이었는데 주방에 도착한 주문서에는 가상의 유령가족이라도 있는 듯 약 5인분 분량의 음식 목록이 전달된다. 음식 앞에서는 항상 의욕적이다.       


어찌 됐건 어른 1인분, 어른만큼 먹는 아이 1인분(하지만 오늘은 예외), 병자 0.3인분 하여 내 계산으로는 2.3인분인데 제이는 봉지를 뜯어다가 죄다 넣었다.  

    

전쟁통에 삼일 밤낮을 굶은 난민처럼 구는 제이를 보니 심장박동이 급하게 뛰었다. 과연 5인분 분량을 2.3명이 다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심호흡으로 심장박동을 정상궤도로 돌려놓고 파스타볼 3개를 꺼내 제이에게 건넸다. 그런데 완성된 까르보나라를 보니 또 소스가 심히 부족해 보인다(까르보나라에 소스 부족은 가장 혐오하는 모습 중 하나다). 두 통을 다 넣었어야 하는데 한병 반만 넣은 결과다.(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제이는 까르보나라를 분배했다. 둘째 아이의 파스타 볼에는 끔찍하게 많은 양의 파스타가 무덤처럼 쌓였다. 곧이어 제이의 파스타볼에는 그보다 더 큰 왕릉 사이즈의 파스타가 쌓였다. 병자의 파스타 볼에도, 입맛 없음을 피력했지만 많은 양이 쌓였다.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많은 양의 스파게티를 먹어?”


“그럼.”


“그러면 왜 1인분이 1인분이라고 적혀있는 거야? 남자에게는 0.5인분이나 그보다 적을 텐데.”     


제이는 말이 없다.      


“아니, 그러면 남자들은 보통 2인분을 사야 되는 거야?”     


나는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미세하게 표정이 조금 어색해졌다. 본인이 대식가임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나라의 1인분 표기가 어딘가 잘못된 것일까? 상식적으로 성인남녀의 평균값으로 정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이다.     


병자 첫째 아이는 0.3인분도 못 먹었다. 둘째 역시 무덤의 절반도 해치우지 못했다. 제이는 그 큰 왕릉을 끝내 해치웠다. 너무 무섭다. 아이들이 남긴 것은 음식물 쓰레기통 행이다. 제이는 혼자서 파스타 몇 인분을 먹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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