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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을 향한 예민함이 아래층의 관대함을 만났을 때

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두 번째 이야기

by 스테디김 Mar 25. 2025

쌍둥이 두 아들과 아파트 윗집이 된 입장에서 아랫집에게는 항상 죄인 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우리 아이들이 점차 달리기 본능이 사라지고, 자기 방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는 때가 오기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래층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위층을 향한 예민함에 마법의 중화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 집 위층의 정체 모를 아이가 매일 100개의 허들을 뛰어넘고 열심히 신체활동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게 만든다. 그 아이가 속히 크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그 아이의 성장을 우주에서 가장 바라는 사람이 아닐까). 가뜩이나 지난번에 제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위층 남자와의 대화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제이와 한 남자가 일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제이가 버튼을 누르자 그 남자가 버튼 바로 위층을 눌렀다. 그리고는 제이에게 속죄하듯 말했다.


“미안해요, 많이 시끄럽죠? 아이가 아직 어려서요.”  


그 얘기를 듣고는 윗 층의 아이가 아무리 허들을 뛰고 장대높이 뛰기를 해도 어서 아이가 지쳐 쉬기를 기다린다. 미안하다, 한 마디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낸다(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찌 됐건 우리도 쌍둥이들이 더 어렸을 때(초등학교 2학년쯤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집안에서 자체적으로 빈번하게 운동회를 벌였다. 뛰지 않고 걸을 때에도 뒤꿈치에 쇠라도 박았는지 어른인 나보다도 더 묵직한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아예 1층을 구해 살기도 했다. 그 이후로 1층을 벗어나게 되니 아이들의 다리를 단속하느라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그리고는 아래층에서 곧 참수명령이 올까 두려움과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던 중 연말이 되어 아래층에 연말인사도 하고 그동안 미안하다는 말을 할 겸 선물을 사들고 인사를 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제이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쥐어 보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공손하게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그리고 쌍둥이 특유의 귀여움도 어필하라고 대사까지 만들어주었다.


“얘들아 공손하게 인사 잘하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도 해. 너희 발바닥 4개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웠겠니? 알겠지?”


제이와 아이들은 굳은 의지를 가지고 문 밖으로 나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런데 금세 걸릴 인사가 시간이 한 참 지나도 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이리 오래 하는 거지?      

곧이어 제이와 아이들이 돌아왔다.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제이는 약간 넋이 나간 듯이 보였다.


“초인종을 몇 번을 눌러도 나오지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좀 많이 기다렸어.”


“그래? 그럼 앞에 선물만 두고 온 거야?”


“아니, 들어봐. 초인종을 몇 번을 더 눌렀더니 인기척이 있길래 기다렸지. 그런데 인기척이 있고도 문이 열릴 때까지 또 한참 시간이 걸리는 거야.”


나는 집중했다.


“그러더니 결국 문이 열였어.”


“그래서?!”


나는 더 집중하며 눈을 크게 떴다.


“할아버지가 나오셨어.”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나오고 말씀하셨다.


“아이고, 초인종 소리를 못 들었어요. 내가 귀가 잘 안 들려~!”


제이는 생각지 못한 할아버지의 등장에 놀랐다.


“안녕하세요. 위층 사는 사람인데 저희 애들 때문에 시끄러울 텐데 죄송하기도 하고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이거 과일인데 좀 드세요.”


“뭐라고? 내가 잘 못 들어~!”


제이는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다시 한번 더 크게 얘기했다.


“저희 애들이 뛰어서 죄, 송, 하다고요~!”


“아, 괜찮아. 괜찮아. 나 귀가 잘 안 들리니까 걱정 말아~!”


밑에서 까르르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준비한 새해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와, 이거 뭐지? 아래층에 귀가 어두우신 어르신이 살고 계셨구나(순간 아까운 선물 생각이 든 건 내가 짐승인 이유일까).  


“인사를 안 갔으면 그런지도 모르고 계속 조마조마 했겠어. 우리 이사하고도 1년 넘게 주변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잖아. 이사 왔을 때 인사 떡도 돌리고 인사 좀 할 걸 그랬나 봐.”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이사를 갔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방방 뛰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층간소음에 대한 죄의식을 조금 덜어도 될 나이가 되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이사하고 떡은 돌리지 않았다. 내향인인 나는 많은 사람은 역시 부담스러워 우선은 우리 집의 아랫집과 옆집에는 연말에 작은 선물과 쪽지를 건넸다.


아랫집은 문에 ‘아이가 자고 있으니 초인종은 누르지 마세요.’라고 메모가 붙어 있었다. 나는 문고리에 도넛과 귤 그리고 인사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살금살금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윗집 쌍둥이네입니다. 저희 집 쌍둥이 남자아이들 때문에 불편함이 있을 텐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발을 열심히 단속하고는 있는데 아이들이 가끔씩 발이 제어가 안 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많이 커서 조금만 있으면 발 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옆집에는 혼자 개 3마리를 키우는 멋진 솔로 언니(언니인지는 확실치 않다)가 살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 사시는데 복작복작한 우리 가정 때문에 시끄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옆집 언니가 먼저 말을 했다.


"저희 개 때문에 시끄럽지 않나요? 아이들(개) 때문에 중문을 설치했는데 혹시 소리가 들리나요?"


"어머, 아니요. 하나도 안 들려요. 저희는 오히려 저희 때문에 시끄러울까 걱정했거든요. 중문이 효과가 굉장히 좋은 걸까요? 아무 소리 안 들리니 걱정하지 마세요."


옆집과는 오가다 마주치는 일이 많아(옆집언니는 개 세 마리를 산책시키느라 바쁘다) 인사를 하고 지낸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서로 문고리에 먹을 것과 인사 쪽지를 남겨둔다. 이제 옆집 언니는 여행을 갈 때면 우리에게 택배보관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사 온 맛있는 간식을 우리 집 문고리에 걸어둔다(그녀는 이번겨울에 개와 함께 제주도에 다녀왔다). 나는 고맙게 받으며 보관해 둔 택배상자를 돌려준다.


그리고 개 세 마리와 여행길에 오르는 그녀를 상상한다. 한 마리도, 두 마리도 아닌 세 마리의 개와 함께라니. 쌍둥이 키우는 내가 작아 보인다.      

 

층간소음으로 칼부림 나는 세상이지만 때론 이웃끼리 말을 트고 인사를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층간소음은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매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층간소음과 같이 경계가 불명확한 것이 있을까.

내가 불편을 당하기도, 주기도 하는. 때론 내가 미안해하는 것보다 더 미안해하는 마음을 만나기도 하고 내가 위층에 느끼는 예민함보다 더 관대한 아래층의 마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온탕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퍼진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층간소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귀가 어두운 아래층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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