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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Mar 31. 2023

나를 신사임당이라 부르는 아들

그래 그럼 너는 율곡이이가 되거라

하루 30분 책 읽기는 아이들과 나의 하루 약속이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부족했다. 빌게이츠처럼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는 진정한 책벌레가 되었으면 내 인생도 훨씬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움 플러스, 사교육을 빵빵하게 밀어줄 수 없는 형편상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쌍둥이들과 함께한다.

가령 박물관이나 특별한 경험을 하고 오면 나는 항상 짧게라도 글을 쓰게 한다. 박물관을 다녀오면 직접 견문록 폼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쓰라고 하는데 역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럴 때 쌍둥이들은 전장의 전우라도 된 것처럼 의기투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한다.


이에 맞서 나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히든카드를 내놓는다.

"그럼 엄마랑 셋이 똑같이 쓰자."

이제 더 이상 적군이 아니다. 같은 편 먹고 셋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자기에게만 일을 시키지 않고(아이들에게 공부=일, 숙제가 많거나 공부가 많으면

"아 오늘 너무 일을 많이 했어~!";; 하긴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업이니 일이긴 하다..) 그 힘든 일을 엄마도 같이 하니, 약간 '쌤통이다' 뭐 요런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거봐 힘들지~?!), 승리에 살짝 도취된 것인지 별다른 반항 없이 그대로 셋이 글을 쓴다. (사실 나는 하나도 안 힘들거든~!)


그리고 낭독의 시간. 10살이 된 쌍둥이들은 아직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읽고 있자니 절로 난독증세가 심해지지만, 그래도 그 안의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내 순서가 되어 또랑또랑 읽어 내려간다. 이쯤 되면 나도 어느새 3학년 1반에 앉아있는 듯싶다.  뭔가 잘 써서 애들한테 칭찬받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ㅋㅋ

 "엄마 잘 썼네~! 아 그걸 내가 썼어야 하는데 그걸 못 썼네~! 아깝다."


칭찬받았다..




오늘의 책 읽기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다. 조선의 대표적 여류작가이자 어머니인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신사임당은 서준이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래. 요즘 말로 하면 화가이자 작가이지. 그리고 아들 율곡이이한테 모든 것을 가르쳐주어 훌륭한 사람이 되었어. 바로 너희가 가지고 있는 5천 원의 주인공이야."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지갑 속에서 5천 원을 꺼내어 본다.


"허난설헌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누나이자 글을 엄청 잘 쓰는 사람이야.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이 능력이 뛰어나도 지금처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어. 만약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요즘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허난설헌은 불행하게 살지 않고 일찍 죽지도 않고 유명한 작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을 거야."

"신사임당은 유명한 화가가 되어 미술 전시회도 열어 돈도 많이 벌었을 거야."


그러면서 뜬끔없이

"그런데 신사임당은 엄마랑 똑같네~!"라고 말하였다.

 순간 깜짝 놀람과 살짝 올라오는 좋아하는 기색을 감추고,

"왜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매일 책 읽고 글 쓰고 우리한테 알려주잖아."


내가 신사임당이라니. 하하.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그림이다. 신사임당이라 하면 모름지기 현모양처의 표본이 아닌가. 나는 그런 단아한 여성상과 거리가 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시선으로는 그리 비칠 수 도 있구나. 아이들은 내가 정식 출판작가도 아니고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해 본 적도 없는 것에 게이치 않는다. 그냥 엄마가 어떤 것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인지 느끼는 듯하다. 뭔가 멋들어진 결과물이 없어도 과정을 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에 나는 무엇인가는 지속할 힘을 얻는 것 같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내가 아이들에게 한 말 때문에 다시 지키려고 한다.


 민준이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싶어 할 때다.

"지금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더라고. 지금 어려운 단계를 시작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 알아. 엄마도 그럴 때마다 그만두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너무 아까운 거야. 그때 조금만 참았으면 그 일이 훨씬 즐거워지고 고수가 됐을 텐데."

며칠 후 학원에서 열린 연말 피아노 연주회에서 민준이가 멋들어진 연주 동영상을 보내오자 나의 감동은 배가가 되었다. 민준이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자,


"그때 엄마 말 듣고 계속하길 잘한 것 같아. 지금은 별로 어렵지 않아.

우리가 같이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음악도 연습해서 연주해 줄게."


아이들에게 내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나도 포기하고 싶은 여러 가지들을 지속해 나간다. 부담을 느끼면서도 용기를 내어 글을 계속 써가고 있고, 물 공포증이 심해 퀵판을 놓지 못하고 혼자만 부여잡고 있던 마지막 수강생이었지만 물 한 바가지 들이키며 비로소 물 공포증도 이겨냈다. (지금은 물개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예쁘게 '인어'라고 하자..) 그 밖에도 여차하면 '때려치기' 전문이었지만 지금은 필명이 '스테디김'일 정도로 꾸준한 것에 대한 예찬론자가 되었다.


이렇게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 가르침대로 내가 살려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오히려 나의 스승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신사임당은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자신을 채워갔으므로 아들에게 그 소양을 전해 줄 수 있었을 듯 싶다. 내면에 어떤 것이 가득차면 흘러나오기 마련이니까.


율곡이이는 5천원권의 주인공인지만 어머니 신사임당은 5만원권의 주인공이다.

화폐의 가치가 서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본다.

내면이 아름답고 견고한 신사임당이 없었다면 율곡이이가 나올 수 있었을까? 좋은 영향력을 주는 멘토를 만나는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다. 나는 그런 멘토가 없었다. 혼자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시간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신사임당과 같은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이 생에서 더이상의 욕심은 없을 것 같다.


"민준아 네가 엄마를 신사임당이라고 했으니 너는 반드시 율곡이이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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