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것을 포기하니, 잠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내가 해결하게 두자!

by 병아리 트레일러너

내 삶에서 최근 3~4년 사이 가장 큰 화두는 역시나 불면증이었다. 호르몬 저하와 함께 불쑥 찾아온 이 불청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지독했다. 잠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 사실 안 해본 게 없었다.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아침이면 햇빛을 듬뿍 받으며 한 시간을 걷고, 상추를 챙겨 먹는 등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 보았다.

물론, 잘 듣는다는 브랜드의 멜라토닌도 먹어보기도 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그 어떤 노력도 이 지독한 녀석을 완전히 몰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출근 전날이면 못 자서 직장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이 먹구름처럼 밀려오곤 했다. "아, 어떡하지? 내일 일하려면 지금 자야 하는데..." 초조한 마음에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질 뿐이었다. "미치겠다. 진짜!" 그렇게 나는 매일 밤, 불면증과 잔혹한 사투를 벌였다. 잠을 못 자니 당연히 직장에서 커피를 수혈하며 버텼던 거 같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불면증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한동안 그런 날들을 보내다가 어느 날밤 여전히 잠은 안 오고 다음날은 여지없이 일하러 가는 날이었다.

잠들려고 애쓰다가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내가 해결하게 두자'하고 낮에 읽던 책 하나를 펴 들었다. 책은 AI시대에 우리의 일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책이었다. 여하튼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책을 한동안 읽어 내려갔다.


약간은 지루함이 느껴졌지만 , 핸드폰은 쳐다보지 않았다. 한 15,16페이지쯤 읽어나갔을쯤이었다.

졸리는듯했는데 아마 나도 모르게 책을 옆에 두고 잠이 들었다. 그때가 아마, 새벽 3시 조금 넘어서인가였나 보다.

알람에 맞춰서 일어났을 땐 출근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여전히 많이 피곤했지만,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잔 밤이었다. 비록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샤워하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역설적이지만, 잠자기를 포기했더니, 잘 수 있었다.

'무언가에 대한 강박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을 못하게 막는 거구나'이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완벽한 8시간 숙면'이라는 강박을 내가 버릴 수 있다면? 어쩌면 나는 다시 예전처럼 책을 읽던, 잡지를 보던, 아니면 지금처럼 책상에서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잠이라는 녀석이 슬며시 내 곁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약, 운동, 식단, 물론 이런 것들도 보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에 모두 잠에 스르륵 빠져들던 청년이었고, 아이였다.


그날밤 이후, 여전히 어떤 밤은 밤새 뒤척이다가,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고 출근하고, 아이스라테로 정신을 깨우며 일에 몰두한다. 또 어떤 날은 그날밤처럼 책을 읽기도 하고, 조선왕조실록을 틀어놓고 듣다 보면 스르륵 잠이 들기도 한다. 물론 성공확률 백 프로는 아니다.

이렇게 나는 또 생존의 공식 하나를 깨닫는다. "잠자기를 포기하자! 아니 잠자려는 노력을 포기하자! 그러면 아마도 나는 잠을 잘 수 있겠지? 하하, 잠 좀 못 잔다고 죽기야 할까? "라며 호기도 부려본다.

그렇다, 잠은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강박을 내려놓고 오늘도 나는 지루한 책(?)을 탁자 위에 준비해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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