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중간 지점에서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이상하게 더 조심스러워졌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서로를 잘 모를 때의 거리, 적당한 질문과 적당한 대답 속에서는 불안이 크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오가기 시작하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말을 고를 일이 많아졌고, 보내지 않은 메시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괜히 숨은 의미를 찾고, 이미 지나간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가까워졌다는 건 편해졌다는 뜻일 텐데, 나는 왜 더 긴장하게 되는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늘 관계의 ‘중간 지점’에서 가장 불안했다.
아직 충분히 확신할 수는 없는데, 이미 마음은 꽤 기울어진 상태. 이 시기에는 작은 변화에도 마음이 크게 반응했다.
연락의 속도, 말투의 온도, 이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태도.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마음은 혼자서
여러 갈래의 결말을 먼저 그려버렸다.
어쩌면 나는 관계가 무서운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내 마음이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만큼
기대가 커지고,기대가 커질수록 상처받을 가능성도 함께 자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까워질수록 조심스러워졌다. 더 솔직해지기보다는 조금 더 안전한 말만 골라서 했다.
마음을 숨긴다는 건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지켜낸 관계는 언제나 조금 불완전했다.
가까운 듯하지만 완전히 닿지는 않는 거리.
요즘은 이 조심스러움이 나의 약점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직도 나는 가까워질수록 불안해진다.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탓하지 않으려 한다.
조심스러움도
내가 관계를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