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끝나 있는 날이 있다.
몸은 분명히 여기에 있었고 시간도 흘렀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하나도 없는 날.
그런 날이면 나는 ‘오늘도 버텼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그 말을 너무 약하다고 말한다. 버틴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 같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버틴다는 말 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걸.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으로 그래도 하루를 끝까지 살아냈다는 뜻이라는 걸.
요즘의 나는 대단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행복해지겠다는 말도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잠시 내려두었다. 대신 오늘을 무사히 넘기는 것.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는다.
아침에 눈을 뜨고 괜히 한숨이 먼저 나오는 날에도
세면대 앞에 서서 얼굴에 물을 묻히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게 내 하루의 전부인 날도 많다.
예전에는 이런 나를 실패라고 불렀다.남들보다 느린 속도,
자주 멈추는 마음, 쉽게 지치는 감정을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어쩌면 나는 계속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다시 일어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이 글은 잘 살아가는 법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잘 버텨온 하루들에 대해 조용히 기록하려 한다.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았던 날들, 괜찮은 척하며 지나온 시간들, 그리고 그래도 여기까지 와버린 마음에 대해.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을 겨우 넘긴 사람이라면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다.
지금의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