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마음이 늦게 따라오는 사람

by 새벽

나는 감정이 빠른 사람이 아니다.
기쁨도 슬픔도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무너지는 순간에도 종종 담담하다.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말로 그때는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마음이잠깐 자리를 비운 것처럼.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고 말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나는 잘 버티는 편이다.
눈물도 잘 나오지 않고 감정이 표면으로 쉽게 올라오지 않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걷다가
갑자기 가슴이 무너진다.

왜 지금이지, 싶은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지고 목이 막히고 숨이 조금씩 가빠지는 날이 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제서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늘 그런 식으로 아프다.

끝난 줄 알았던 일들이 정리된 줄 알았던 감정들이
나를 놓아준 줄 알았던 기억들이 뒤늦게 문을 두드린다.

“아직 여기 있어.” “아직 안 지나갔어.”
그렇게 말하듯이. 늦게 오는 감정은 대처하기가 더 어렵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누구에게 말하기도 애매하고,
이미 괜찮아진 척을 해버려서 다시 힘들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또 혼자 받아낸다.
혼자서 뒤늦은 마음을 정리한다.

어떤 날은 이런 내가 답답하다. 왜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왜 이제서야 이렇게 무너지는지. 그런데도 이게 나라는 걸 안다.

나는 현장에서 울지 못하는 사람이고 집에 돌아와서야 무너지는 사람이다.

나는 버티는 데는 익숙하지만 회복하는 데는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언제나 조금 늦게 따라온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예전에는 이런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바로바로 울고 바로바로 털어내고 바로바로 괜찮아지는 것 같은데

나는 한참 뒤에야 아프고 한참 뒤에야 울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괜찮아졌다.

그게 내가 약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늦게 오는 감정은 늦게라도 살아 있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아예 멈춰버린 게 아니라 그래도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늘도 나는 조금 늦게 무너질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무너짐을 실패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 마음이 도착하는 방식이라고 조용히 인정해주기로 했다. 나는 마음이 늦게 따라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천천히, 더 조심하게 살아간다.그리고 그 속도도
나쁘지 않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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