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 했던 이유

by 새벽

관계에서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건 가까워지는 속도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건 괜찮았다.


말을 주고받고, 웃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까지는
비교적 편안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마음이 어느 순간 생각보다 더 깊어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때부터 나는 은근히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너무 자주 연락하지는 말자. 먼저 묻는 건 줄이자. 내 일상을 전부 말하지는 말자. 마치 관계의 온도를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계산적이 되었다.
혹시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더 많이 기대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더 많이 필요해지는 건 아닐까.


그 ‘혹시’들이 나를 한 발 물러나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나는 늘 차분한 사람이었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사람.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을 가능성을 미리 줄이려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가까워지는 게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가까워진 뒤에 멀어지는 상황이 두려웠다. 그래서 애초에
조금 덜 가까워지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대를 줄이면 상처도 줄어들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늘 같은 결과를 남겼다.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나는 온전히 들어가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내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조절된 태도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상태로 서 있게 되었다.


요즘은 그 거리를 다시 생각해본다. 거리는 상처를 막기 위한 장치일까, 아니면 내 마음을 숨기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조금 덜 숨기기로 했다면, 어쩌면 조금 더 가까워질 용기도
필요한 건 아닐까. 물론 여전히 조심스럽다.


모든 걸 다 내어놓는 관계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를 지키는 선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선이 두려움에서 그어진 건지, 나를 존중하기 위해 그어진 건지 한 번쯤은 돌아보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는 두려움이 그어놓은 선 안에 안전하게 서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선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조용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완전히 지우지도 못하고, 완전히 넘지도 못한 채.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 덜 숨은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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