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선을 그으며 관계를 했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선을 넘기지 않기 위해,
선을 지키기 위해. 그 선이 나를 보호해준다고 믿었다.
조금 덜 기대하고, 조금 덜 표현하고, 조금 덜 의지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선 안에서는 상처가 덜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선은 나를 지키기 위해 그은 걸까, 아니면 다치지 않기 위해 숨은 걸까.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질문이었다.
나를 지키는 선은 나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나는 여기까지가 편하다고, 나는 이런 방식이 좋다고,
나는 이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조용히 말할 수 있는 기준.
하지만 다치지 않기 위해 숨은 선은 늘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혹시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더 기대하는 건 아닐까, 혹시 결국 나만 남게 되는 건 아닐까. 그 두려움은
선을 더 두껍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움직임이 적어졌다.
관계는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가까워지는 대신 안전한 지점에 머무르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야 덜 아플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감각은
곧 고립과 닮아 있었다. 아무도 나를 넘지 못했지만,
나 역시 아무에게도 온전히 다가가지 못했다.
그제야 조금씩 구분하게 되었다. ‘나를 지키는 선’과
‘나를 숨기는 선’은 다르다는 걸. 나를 지키는 선은
상대에게 말할 수 있다.
이건 내가 불편해. 이건 나에게 중요해. 이건 나에게 상처가 돼. 그 선은 투명하다. 하지만 나를 숨기는 선은 설명되지 않는다.
괜찮은 척 웃고, 별일 아닌 척 넘기고, 속으로만 정리한다.
그 선은 두껍지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선 안에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졌다.
선을 지우는 게 아니라, 선을 투명하게 만드는 쪽으로.
내가 어디까지 편한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왜 그 지점이 중요한지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쪽으로. 모든 관계가
깊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깊어질 수 있는 관계 앞에서 내가 먼저 도망치지는 않기를 바란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선을 그어본다.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선인지, 아니면 나를 숨기기 위한 선인지. 아직은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차이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