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내 선을 혼자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을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라 믿었고,
설명해도 이해받기 어려울 거라 단정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은 말 없이 그어졌다.
이건 내가 참자. 이건 내가 넘기자. 이건 굳이 말하지 말자.
그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누군가가 물었다.
“이건 괜찮아?” 짧은 질문이었다.
의미를 깊게 담지도 않았고, 특별히 진지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괜찮은지 묻는 말. 나는 그 질문을 받아본 적이 많지 않았다. 관계 속에서 내가 어디까지 편한지,어디에서 멈추는지, 그걸 먼저 물어본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나는 잠시 멈췄다.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괜히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사실은, 조금 불편해.” 말을 꺼내는 동안 여전히 심장은 빨랐고, 여전히 혹시 모를 반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설득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하자.” 그 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선을 설명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들 필요는 없었구나.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알았다.
선을 지키는 건 혼자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누군가는 그 선을 이해하려 애쓰고, 존중하려 하고,
함께 조정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선을 지키는 일이
더 이상 관계를 위협하는 행동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선이 있을 때 관계는 더 분명해졌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상대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모든 사람이 선을 존중해주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이 사실을 안다.
선을 말하는 건 관계를 깨뜨리는 행동이 아니라,
관계를 정확하게 만드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선을 가볍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숨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는 걸.
불안을 데리고 관계를 한다는 건 어쩌면 이런 장면을 조금씩 늘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혼자서만 지키던 선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는 선으로 바뀌는 순간들. 그건 생각보다 조용했고, 생각보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