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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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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an 10. 2024

네게 든든한 사람이 되는 건 당연한 거야 epi.2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아서

첫 에피소드를 게시 후 조금 후련하기도 했지만

썩 기분이 좋지도 않은 오묘한 마음이었다.


내 사랑의 방식은 물론이고,

아직도 사랑이 어렵고 더딘 모두에게

그냥 잠시 앉아서 생각해 보는 그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글이었다.


예상치 못한 오묘함의 이유는

일기장에 쓸만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적어서라기 보단


어쩐지 과거를 회상할수록

그때의 내 감정과 기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 할수록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나의 모습들이

먼지 한 톨 없는 거울처럼 비쳐서가 아닐까 싶다.


거의 대부분의 자기 계발 서적들이 그렇듯

앞으로 잘해나가고 싶다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교훈만 얻고 얼른 빠져나와야 한다.


각자의 마음을 헤아려 글로 정리하는데

이 과정이 아직은 내게 익숙지 않아

꽤 오래 머물렀던 탓이었을 것이다.


단 한 개의 글이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었다.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은 무궁무진하고

내가 써 내려갈 글감들도 빽빽하다.


앞으로의 깨달음을 기대하며

다시 키보드 위 양손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Episode 2. 네게 든든한 사람이 되는 건 당연한 거야


만남을 시작한 뒤, 첫 여행을 떠나는 주말이었다.


각자 본업들로 피곤한 나날이었지만

시간을 쪼개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주말에만 쉴 수 있는

내 시간에 맞춰서 다녀왔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다.


평일과 주말을 따지지 않고

일을 쫓아다니고 쫓겨 다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고마웠다.


배려는 고마운 그대로 느껴야 하는 것임에도

나는 마음 한구석에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이 사람의 시간을 뺏어도 되는 걸까?'

'혹시나 나랑 있는 게 즐겁지 않으면 어떡하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내게 실망하면 어쩌지?'


그를 배려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이

사실은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뚝딱거리거나 어색한 부분들이 보였을 것이다.


과거의 연애도 그랬다.


나를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내가 사랑받을만한 행동과 태도를 가져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상대가 싫어하는 건 되도록 피하려고 했고

할 수 있는 건 더 챙겨주려고 하며

더 많이 표현해 보려 노력했다.


그러다 내가 노력하는 것 이상의 마음을 바라거나

당연하게 여기거나,

내가 상처받을 것만 같은 타이밍에는 먼저 이별을 고했다.




그와의 여행은 편안했다.

퇴근 후 바로 출발한 나를 위해 배려해 주고

나의 필요를 알고 행동해 주었다.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도

그의 행동은 언제나 내게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신경 쓰였다.

내가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내가 챙겨줄 것은 없는지,

부담이 되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주변을 산책하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다툼이 있었다.


다툼이라는 걸 인지한 순간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며

모래성 같은 견고하지 못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즐겁게 여행하는 시간에

다툼이 생긴 것 자체가 싫었기도 했고

'굳이 그렇게 말했어야 했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론 쿨하게 넘어가지 못한 스스로가 답답했다.


결국은 오해로 인한 다툼이었음을

서로가 알고 있었고

나 역시 혼자 생각하고 판단했음을 사과하고

느낀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짧은 여행이 마무리되고 집 앞에 데려다주었다.


오랜 운전시간이 미안하면서도 걱정되던 찰나,

침대에 누워 잠시 통화를 나누었고 문득 그가 말했다.


"아직 내가 불편한 거지? 그런데, 난 네 남자 친구니까 보고 싶어서 보러 가는 거야. 네가 문득 보고 싶다고 올 수 있겠냐고 한다면 나는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면 당장 달려올 거야. 그게 네 권한이야"


"난 너와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편안해, 너도 그랬으면 좋겠고.. 네가 힘들거나 불안할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
내가 네게 든든한 사람이 되는 건 당연한 거야."


간결하고 명확한 그의 어조에 마음이 놓였다.


최근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들과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예민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연인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노력과 배려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나 역시 그 마음에 답하듯 배려하며

그와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 마음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며.

22.06.13 13:53 PM




저렇게 서로를 배려하는 사이었는데

왜 헤어지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엔 마음을 다 소모했고

사랑할 만큼 사랑했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졌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았던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마무리가 썩 좋지 않았더라도

그 좋았던 기억과 그날의 감정은 그대로다.

굳이 그 기억들까지 훼손시켜

이별이란 선택을 합리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날의 깨달음이 지속되진 않았어도

다시 읽어보니,


당시 내가 받았던 마음은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가 주고받는 감정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내가 아닐까 싶을 때,

내가 소중한 마음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싶을 때,


울먹이며 '나는 이렇게나 부족한 사람인데..'란 마음은

나뿐만이 아닌 상대에게도 실례임을 알게 된 것이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에

내가 제대로 이해하게 될 시기에 

이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연인을

'부족한 사람에게 마음을 베푸는 자선사업가'로 만들지 말자.


과거의 상처? 성장환경? 바뀌지 않는 성격?


모든 것들을 이해해 주길 바라며 턱밑까지 밀어 넣고,

"내가 이런 사람인데 그래도 넌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어?"

묻지 말자. 그건 부모님도 버거운 부분이다.


다만, 나의 아픈 과거를 딛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


서로의 관계와

자신에게 훨씬 도움 되는 방법이다.




이제는 내게 든든한 사람이 아닌 것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임을 안다.


결국 진심이 잔뜩 묻어있는 배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24.01.10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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