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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21. 2023

색이 변하는 계절, 피어나고 지는 계절.

가을에 관하여

10월 21일 토요일 오전


 추워지긴 추워졌구나 생각하며

이사할 때 옷 정리까지 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어제 오랜만의 운전 길에

길가의 붉거나 노랗게 치장한 나무들을 보며,

종착점의 주차장 귀퉁이의 코스모스를 보며,

매년 보는 모습이지만

각기 다른 색채와 분위기에 잠시 속도를 줄였다.


오늘 아침엔 비가 왔고 호르몬의 노예가 된 나는

미리 타이레놀 한 알을 챙겨 먹었다.


쌀쌀한 날씨와 대부분의 여성들이라면 겪는 일은

특별히 여길 까닭은 없기에 억울한 마음 없이

아침을 간단히 차려먹었다.


밥을 먹고 어제 외출 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가방을 정리하고 나니 오전 10시.

매일 아침 7시면 집을 나서던 나의 하루 중

일부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최근의 나는 예민했고,

극도의 불안감 속에 지내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잠들면 악몽을 꾸다 일어났다.


정말 감사하게도 가끔씩

바쁘고 열정적으로 사는 삶이라고 말해주시거나,

능력도 많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내게 과분한 칭찬을 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최근'이라고 말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생을 

예민함과 불안함 속에 지내왔고, 

그 감정들과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어

발버둥 쳐왔을 뿐이다.


현실을 버텨 낼 자신도, 도망칠 자신도 없어서

다른 곳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언가에 집중하려 하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더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취미가 성과 내기가 된 것이고, 

덕분에 다소 난잡하지만

방대하고 다양한 취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목표 성취에 불가하다는 것과 

유명 인사의 성공기의 후일담으로 나올 만큼 

성과를 낸 것은 아니란 걸 나와 당신도 알고 있다.


약간의 허무함에 빠져 나의 일상, 지금 해야 할 일.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니 

쌉싸름한 녹차라떼가 먹고 싶어졌다.



 


 비가 그쳤고 기분 전환 겸 밖을 나서서 

카페에 가는 길에 주변 공원의 나무를 보다 

찍은 사진이 오늘의 표지 사진이 되었다.


어제 잘 꾸며진 가로수길에선 볼 수 없었던

틀어진 밸런스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싶었지만

초록의 배경이 된 풍성한 나무들과

앙상한 나뭇가지가 유독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초록이어도 이상하지 않고

앙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단풍잎'하면 생각나는 노랗고 빨간 잎사귀들이

길가에 나뒹굴어도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말라비틀어져 쉽게 바스러지는 

마른 잎사귀라 할지라도 이상할 것 없는

가을의 주변 풍경이다.



 집에 돌아와 차가움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

주문한 녹차라떼를 텀블러에 옮겨 담았다.

'텀블러를 들고 갈걸!'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탄소중립 녹색생활 실천과는 상관없이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별 수 있나.


그리고

집안에서 보이는 방충망을 통한 초록 뷰를

즐기고 페이퍼인센스를 한 장 찢어 태웠다.


스타벅스 텀블러와 방충망.

이상한 조합이지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내 환경과 현재의 삶,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

온통 이상한 조합들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건 없다.



아픈 마음에서 새로운 도전이 피어나는 것도,

또 어느 날엔 지는 낙엽이 되어

길가에 나뒹구는 처량한 마음인 것도.


색이 변하고 피어나고 지는 계절이니 다 괜찮다.


안 괜찮게 느껴지고

안 괜찮게 보이더라도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당신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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