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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Aug 08. 2023

다가가기엔 어렵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엔 외로운

편지 #6

K에게,


7, 8월의 날씨는 정말 덥구나.

열대야에 선풍기를 틀고 잤더니 너무 춥고, 그렇다고 끄고 자면 너무 더워. 갈팡질팡하는 내 몸의 온도를 생각하다가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의 내 마음도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져. 너와 나는 운 좋게 어렸을 때 만나서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만약에 우리가 성인이 된 후에 만났더라면 이렇게까지 친해지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어렸을 때,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만나는 건 지금보다 훨씬 쉬웠어. 같은 기숙사에 산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정말 빨리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어. 그때는 서로 비슷한 게 한 가지만 있어도 쉽게 놀라고 쉽게 반가워했던 것 같아.

"오! 너도? 와! 나도!"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별 시답잖은 얘기로 꽤 긴 시간을 채울 수 있었어.


직장 생활 4년 차에 접어들고 나이도 서른을 넘기면서 학생 때보다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사람들 중 친구로 발전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야. 학생 때는 단편적인 몇 가지만 비슷해도 대화가 즐거웠는데 이제는 대화의 속도, 언어, 삶의 방향성, 서로가 처한 상황 등등이 맞아떨어져야 즐거운 대화가 가능해졌어.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나를 둘러싼 벽이 낮아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어.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남에 대한 이해보다는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열기 어려워졌어.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우리의 다름을 불편함으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


이 편지의 제목을 처음엔 "다가가기엔 귀찮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엔 외로운"으로 달았다가 여러 번을 고쳤어.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시간을 내는 일을 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귀찮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물론 귀찮기도 해. 집을 나서려면 밖에서 쓸 에너지를 미리 비축해 놓아야 하는 나 같은 I에겐 특별히 귀찮은 일이지. 그런데 그 귀찮음의 이면엔 다양한 감정들이 숨어 있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상대방이 나를 귀찮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서로의 다름이 불편함과 어색함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지나친 불안.


그래서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려운 거야. 새로 만난 사람에게 "조만간 밥 먹자"라는 텅 빈 말 이후에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돼?"라는 말을 꺼내는 게 그렇게나 힘들었던 건 이런 복잡한 감정 때문일 거야.


게으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외롭다는 말만 반복해.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이 온 지구의 힘을 모아 나와 누군가를 연결시켜 주기를 고대하면서.


오늘은 주말의 끝인 일요일이야. 혼자 보내는 늦은 오후의 편안함이 외로움과 우울함으로 바뀔 쯤에 추리닝을 대충 입고 동네에 나가서 파이브가이즈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켜 먹을 거야. 그러면 기분이 다시 좋아질 것 같아.


너도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길!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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