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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Aug 23. 2023

취업이 잘 되는 나, 취업이 잘 되지 않는 나

편지 #7

K에게,


요즘 회사는 어때?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네가 문득 떠올랐어. 만약 우리가 50억 로또에 당첨된 사실을 숨기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고민 따윈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니깐 일에 대한 고민은 은퇴하기 전까지는 안고 갈 수밖에 없나 봐.


오늘 나는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을 기념해서 첫 연차를 썼어. 첫 한 달 동안은 불안하고 무섭고 어색한 감정들이 넘쳐서 머릿속이 뿌연 안개 같았는데 이제야 조금씩 하늘이 맑아오는 것 같아. 그래서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어.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의 내 마음은 어땠을까.


2월부터 5월까지. 취업이 되지 않는 백수 시절의 나를 돌아봤어. 1월에 전 직장을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취업을 빨리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취업이 안 됐을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안전장치(비상금, 대학원 등등)를 준비해 두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이 필요하게 될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취업이 안 되는 시간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면서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걱정이 커졌고 그 걱정은 어느새 현실이 됐어.


그 시간 속의 나는 불행한 사람이었어. 몇 차례의 면접 후에 돌아오는 것은 친절한 불합격 이메일이었고 그건 나의 능력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부족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여기까지 나를 오게 한 선택들이 모두 잘못된 선택처럼 느껴졌고 후회해도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무기력함마저 느껴졌어. 내가 만든 불행의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더 괴롭게 한 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어. 불행은 타인 앞에서 더 선명해지기 마련이니깐.


나는 비참히 가난한 사람이었어.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천 원이라도 더 싼 것을 고르게 되고 친구와 오랜만의 외식을 하는 날 즐거운 마음 뒤편에 돈이 얼마나 나올까 걱정하는 또 다른 내 자아가 느껴질 때 비참함은 더 깊어졌어.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한번 더 꾹 참게 되고, 2만 원어치의 충동적인 온라인 쇼핑을 하고 난 후 다음날 바로 후회하며 반품 신청을 하곤 했지.


취업이 잘 되는 나와 잘되지 않는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나의 가치관, 취미, 지식, 생각, 가족 등 나를 나로 만드는 것들은 그대로였는데.

후자의 나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을까. 돌아보면 그때의 무표정한 나를 꼭 껴안아 주고 싶어. 괜찮다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


불행한 상황에 있다고 해서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가난이 꼭 비참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아.

다정함과 친절함.

어떤 일이 생겨도, 어떤 상황 속에 있어도, 이 두 가지만 놓지 않는다면 우린 반드시 괜찮을 거야.

간신히 살아있는 삶과 넉넉히 살아가는 삶의 차이는

기분이 좋지 않아도 먼저 건네는 인사와

열매가 없어도 어제 한 일을 오늘 똑같이 하는 성실함에 있다고 믿어.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길이 탄탄대로일리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건 아니야.

큰 사건 없어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을 추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테니깐.

불행한 시간 속에서도 불행해지지 않을 용기는 뭉게구름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 샘솟는 것 같아.


오늘 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고 편하게 잠들 수 있기를 바라.

다음에 만나면 내가 취업 턱을 쏠게.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둬.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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