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9
K에게,
오래전에 네가 그런 말을 했었지. 독서는 직업, 취미와 상관없이 생을 통틀어서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매일 한 시간은 꼭 책을 읽는다고 말이야. 그날 아무리 책을 읽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꼭 책을 읽는다고 말했어. 그렇다고 책을 읽는 게 엄청 재밌지는 않고 책을 빨리 읽지도 못한다고 심지어 약간의 난독증이 있다고 했어. 나는 그 말이 너무 신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걸 매일매일 할 수 있냐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어. 그러자 너는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독서가 내겐 중요해”라고 답했지.
그땐 몰랐는데 오늘에서야 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싫어도 힘들어도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 일. 너에게 독서가 그런 일이라면 나에겐 글쓰기와 작곡이 그런 일이야. 가치 있는 일.
경제적 보상, 타인의 인정과 칭찬, 스트레스 해소, 재미, 시간 때우기, 휴식 등의 목적이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일 말이야.
독서, 글쓰기, 작곡에 내재된 반짝이는 가치를 알게 되면 고통스럽고 귀찮더라도 내 삶을 그런 일들로 채우고 싶어져.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생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나는 글 쓰고 노래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글이 주는 용기와 노래가 주는 위로. 이 두 가지만큼 내 삶을 흔들었던 건 없었거든.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거나 설레는 감정은 아니야. 오히려 나는 글을 쓸 때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노래를 만들 때도 불면에 시달리며 고통받아.
그런데도 내가 꾸준히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어려운 글을 쓰고 난 후 이름 없던 감정에 이름이 붙여지고 생각이 선명해지면서 내일은 조금 다르게 살아갈 용기가 생겼던 날,
우연히 들은 멜로디와 노랫말이 우울감에 잠겨있던 나를 다독여준 날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야.
일에 쫓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 충전을 위해 필요한 공백도 챙기다 보면 남아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아.
많지 않은 여유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글쓰기와 작곡에 쓸 시간을 더 전략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날에도 카페에 가서 억지로 아이패드를 펼치고 브런치 앱을 키는 것처럼.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늘기도 했으면 좋겠어.
더 좋은 글, 더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
다음 주 주말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작곡과 글쓰기에 쓰려고 해. 그때 또 쓸게.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