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경계를 풀어가는 시간들
OT에 참여해야 이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청년이음센터 때나 청년기지개센터 때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년기지개센터의 경우 작년 지원사업 수혜자는 따로 취소 신청을 하지 않으면 올해 자동으로 연장되지만, 올해도 OT는 참여해야 한다고. 매년 그렇게 OT에 참여하며 올해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도 듣고, 참여서약서에도 서명하고, 매니저님들이나 다른 청년 분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청년이음센터 OT 때는 6회기의 원예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다. 식물을 집에 가져가는 건 정말 감당 안 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 식물들은 대체로 오래 가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일부는 집에 가져가기를 거부하고 복지관에 기증하기도 했지만. 로즈마리를 장마철에 심어서 금방 죽어버린 건 아쉬웠다. 다른 식물은 관심 없지만 로즈마리는 맛있었는데. 심으면서 뜯어 먹지 말고 집에 가서 씻어 먹으라고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장마에 의해 다 죽어버릴 줄 알았으면 그냥 심고 나서 다 먹어 치울 걸 그랬다. 확실히 나는 허브를 좋아한다. 언젠가 케익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장식용으로 구비되어 있던 타임이라는 허브를 혼자 씹어 먹던 것도 생각난다.
하여간 원예 프로그램, 흥미도 없고 결과물은 감당 안되는 프로그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프로그램을 참여하기 위해 먼저 참여해야 하는 OT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신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1회기만 OT에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는 따로 신청을 받은 청년기지개센터의 원예 프로그램은 OT 때 두 개 심어갔을 뿐 이후의 것들은 신청하지 않았다. 듣자하니 더 이후에 OT에 참여한 사람들은 1회기마저도 OT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 이번에 심은 녀석들 중 하나인 산세베리아 문샤인은 웬 일인지 아직까지 무사히 살아 남았다. 나머지 한 녀석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원예 프로그램은 나랑 영 안 맞는 것 같아서 거부하는 편인데, 그래도 이렇게 몇 개월이나 살아남는 녀석이 한 놈이나마 나타나니 나름 애정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원예 프로그램에 또 참여하겠냐고 한다면 안 하겠지만. 원예 프로그램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내 영역에 들어온 생물을 죽이는 경험은 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식비 지원 프로그램인 청년맞맛상에 참여할 때는 아직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데, 이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 같고, 나 혼자만 유독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다들 서로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센터 자체에 대한 경계심과 참여 청년들에 대한 경계심을 놓치 못한 채 일단 당장 나에게 득이 된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뿐이었다. 고립감 해소니 뭐니 하는 건 모르겠고, 그저 실제적인 이득이 나를 이끌었다. (누군가는 고립은둔청년들에게 예산을 쓰는 게 돈 낭비라고, 그렇게 일 안 하고 얻을 수 있으니까 점점 더 안 나오는 거라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저게 효과적인 유인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단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넘어갔다.)
그런 나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제공했던 첫 번째 프로그램이 동아리 형태의 자조모임이었다. 하나의 주제로 다섯 명 이상의 청년이 모이면 인당 10만원 정도의 지원금이 나오는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나. 청년맞맛상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 그 이야기를 들었고, 청년맞맛상의 연장선 느낌으로 요리 동아리를 만들면 어떻겠냐며 대여섯 명 정도의 청년이 모였다. 아쉽게도 각자의 사정으로 첫 번째 동아리 OT 전에 최소 인원 미달 수준으로 인원이 줄어들었다가 그대로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때 함께 논의했던 이들 중 한 명은 문화예술 동아리로 갔고, 나는 운동 동아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외 인원들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사당역 근처의 청년 공간에서 진행된 첫 번째 동아리 OT는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되지 않아 불참했고, 생명의전화 복지관 1층에서 진행된 두 번째 동아리 OT에만 참여했다. 듣자하니 첫 번째 OT 날에는 운동 동아리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는데 두 번째 OT 날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두어 명의 청년들이 음악 동아리 논의를 하고 여러 명의 청년들이 문화예술 동아리 논의를 하고 그러는 동안 나는 논의할 사람 없이 혼자 동아리 기획서를 작성해야 했다. 어느 복지사 선생님께서 첫 번째 OT 때 나왔던 이야기를 일부 전해주시며 함께 해주시긴 했다.
나는 단지 클라이밍이 해보고 싶었다. 그것에 대해 아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전신운동이 되면서 상당히 재미있다고 누가 얘기했던 것 같다. 그게 누구였는지도 이제 와서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코어 힘도 많이 필요하고 기본 근력이 안 되면 올라가기는 커녕 매달리는 것조차 힘들다고도 하던데. 나의 근력과 체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내 돈 내고 하러 가보기는 주저하게 되어 이번 기회에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클라이밍 단일 종목의 운동 동아리로 할지 다양한 종목을 조금씩 맛보기 식으로 체험하는 운동 동아리로 할지에 대한 논의도 해야 했는데, 첫 번째 OT 날에도 클라이밍에 관심 갖는 분들이 있었다고 하고 나는 조금씩 건드려보기보다는 한 가지를 꾸준히 해보고 싶었기에, 어차피 나만 왔으니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클라이밍 단일 종목으로 밀어 붙였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느니 서로를 응원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느니 하는 것은 기획서에 기대되는 점을 적어 내야 한다기에 나중에 끼워 맞춘 이야기일 뿐이고 말이다. 어느 업체로 가면 좋을까 하는 고민은 복지사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셨는데, 아무래도 서울 전역에서 모일 수 있으니 너무 구석보다는 서울 중앙 언저리가 좋지 않을까 하며 종로구 언저리로 찾아보다가 클라이밍파크 종로점이 정기모임 장소로 정해졌다.
신체 건강이 정신 건강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던가. 클라이밍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러 가지로 개선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사적인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클라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던 동아리 사람들을 시작으로 다른 청년 분들과 조금씩 상호작용을 하게 되었고. 아주 친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도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초반과는 달리 클라이밍을 한두 달 정도 하고 나니 언제부터인가 좀 더 편하게 참여하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체력적으로도 좀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체지방량은 표준인데 근육량이 적어 비율상으로 경도비만이 뜨는 녀석이었던 만큼 체력과 근력이 많이 모자란 편이었는데, 이제는 보통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좀 더 뚠실하고 강인한 녀석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말이다. 하여간 게임만 하며 늘어져 있는 시간도 줄었고 정기권 기간 동안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클라이밍을 하겠다고 오전에 집을 나서곤 했다. 오전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하는 과수면이 심해 오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신청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클라이밍을 계기로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녀석이 되었다는 성과도 있다.
사회성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지만 주변에 대한 경계가 줄어드는 것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많이 편해지기는 한다. 청년이음센터 활동을 할 때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불친절하다느니 뭐 하는 프로그램인지 감도 안 잡힌다느니 하며 프로그램 안내 문자를 외면하는 일이 잦았지만(여전히 구체적인 설명 없이 추상적인 포스터 하나만 띄워놓는 방식에는 거부감이 든다는 건 여담) 클라이밍 동아리 활동과 함께 많이 개선된 청년기지개센터의 나는 적당히 흥미로워 보이면 일단 그냥 신청해 보게 되었다.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시도해 보며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무엇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나 자신에 대한 사소한 정보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늘 그렇게 관찰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관측해 나가며 알아가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