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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

by 단휘

대체적으로 인간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청년이음센터 활동할 때에는 권역 센터에 그런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둘 중 무례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은 그래도 권역 분들 모두 모일 때나 봤지 평소에는 볼 일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나머지 한 명은 권역 동아리가 겹쳐 볼 때마다 스트레스였다. 긍정적인 영향받으려고 모였는데 매번 프로그램에 참여한답시고 와서는 시큰둥하게 의욕 없이 있다가 일찍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서 보는 나까지 의욕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실례되는 말이긴 하지만 그럴 거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분들이랑 가벼운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한 사이가 되었을 때 들어보니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둘 모두 청년기지개센터로 넘어와서는 보지 못했다. 불편한 사람들이긴 했어도 마냥 세상의 뒤편에만 있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모쪼록 각자 괜찮은 곳을 찾아 도움을 받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청년기지개센터로 넘어와서도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없진 않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칭찬받는 것을 못 견디며 어떻게든 험담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가 정해놓은 답만을 고집하며 다른 의견을 묵살하려 하고 남들이 하는 말을 전부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자기 방어적인 맥락에서 주변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나랑 상성이 너무 안 맞아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상호작용하면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그 사람이 공격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상황만 잘 풀어줘도 대체로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렇게 풀어서 말하지 않고 그에게 있는 그대로 대하는 사람과 자꾸 문제가 발생해서 싸우고 있긴 하더라. 아무리 봐도 본인이 급발진해서 벌어진 일인 상황을 들이밀며 누가 잘못한 것 같냐고 묻기도 했다. 나야 늘 무조건적으로 편들어주는 녀석은 못 되어, "이러이러한 맥락에서 당신이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겠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런데 이 부분은 당신의 언행으로 인해 저 사람이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이러이러한 의도로 한 말인 것 같은데 좀 더 이러저러하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식으로 상대에게 할 말은 다 해버렸지만.


사실 청년기지개센터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중에는 나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불편을 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있었어도 그저 스쳐 지나가고는 더 이상 마주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다. 방어기제 중 억압이라고 하던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면 부정적인 감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그것이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닫지 않는다면 대체로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는 편이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닫는다면? 그 사람 자체를 안 만나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상태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 자체를 잊어버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유독 누군가의 이름을 자주 까먹는다거나, 그 사람이 언급되었을 때 비로소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떠올릴 뿐, 존재 자체를 완전히 망각해 버린다거나. 프로그램에서 만났는데 명단을 보기 전까지는 상대를 못 알아봤을 때 새삼 이런 특성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어쩌면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가 상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면 그것만으로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우호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 아닐까.


청년이음센터 출신 청년들 중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은 대체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이제는 그 적정선을 지키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다. 곁에 두느라 애쓰지도, 완전히 손절하지도 않고, 그냥저냥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늘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과는 다르게 말을 하며 평소에는 다 안다는 듯이 얘기하다가 불리할 때만 까먹었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며 지내고 있다. 당사자가 나를 마음이 잘 맞는 친구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말에 살짝 놀랐을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는 잘못된 정보가 너무 거슬려서 정정하려고 하기도 하고 한 마디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크게 문제 될 것 같아 보이는 것 아니면 말하고 싶은 대로 내뱉으라고 두는 편이다. 주변에서도 다들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있기도 하고, 악의적인 왜곡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해서 말이다. 나에게도 불안 증상이 심해지면 무언가를 자꾸 망각해 버리는 무의식적인 현상이 있기에,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이슈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한다. 나 또한 내가 가진 증상을 인지하는 것조차 한참 걸렸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영 불편한 사람은 완전히 안 만나버리는 경향이 있다. 처음부터 안 만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잘 지내보려고 했다. 상성이 안 맞을 게 뻔히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막 친한 사이는 아니어도 그럭저럭은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안 맞는 지점이 몇 번 누적되고 나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썩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결정적인 계기 몇 번이 있고 나서는 그 사람이 참여하는 모임에는 가지 않겠다고 친한 사람 일부에게 선언을 해두었다. 그 사람이 오는 모임에는 어차피 안 갈 테니 굳이 나에게 물어보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고 나니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망각해 버려서 센터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명단을 보기 전까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안 만나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고, 나머지는 그래도 덜 만나려고 할 뿐 만나게 되면 함께 시간을 보내기는 한다. 다만, 접점이 생기면 거부하지는 않는다일 뿐, 자발적으로 만남을 갖지는 않는다. 그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모든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10대 시절 행사장에서 봉사활동할 때 스쳐 지나가던 불특정 다수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이기 때문에 적당히 웃어넘기며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번 이상 반복해서 만나야 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상대와의 지속적인 관계성을 생각하며 지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는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지만, 반복해서 만나는 사람은 이 사람이 누구고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빠르게 기억할수록 좋다. 사소한 것까지는 기억 못 하더라도 이름과 외모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그걸 인지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전학 가는데 왜 내가 같이 단체사진을 찍어야 하냐고 했던 적도 있다. 아마 2학년 2학기 때였을 것이다. 사회성이라는 게 좀 더 있었다면 그냥 말없이 찍혀 줬으면 될 일인데 난 거기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서른 명 정도 되는 학급 내 학생들을 2학기가 되도록 기억하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애초에 기억할 의지조차 없었던 것 같다. 일 년 동안 열심히 외워봤자 다음 해가 되면 다 흩어질 사람들이었으니. 초등학생 때는 그래도 좀 외워보려고 했지만 (그래봤자 한 학년에 90명이 조금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는 어느 순간 기억하기를 포기했다.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려면 소규모로 만나야 하는 것 같다. 서너 명 정도가 적당하려나. 단둘이 있으면 조금 부담스럽고, 대여섯 명 넘어가면 다 같이 소통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단둘이 있어도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지는 않더라. 어느 정도가 나에게 편하고 어느 정도부터 불편한지, 그런 인간관계의 요소 하나하나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사람을 기억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특성은 요즘은 초면에 조금 양해를 구하는 편이다. 대체로 이해해 주시더라. 대인관계 개선을 바라며 청년이음센터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보다는 여러 모로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그만큼 지원사업이 많이 도움이 된 거겠지. 인간관계 측면에서 이 이상의 것은 지원사업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부딪히며 나아가야 하는 부분인 듯하다. 앞으로는 지원사업에서는 다른 영역의 것들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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