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느낀 것들
청년기지개센터 활동을 하며 원데이 클래스나 강의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혼자서라면 절대 안 해보았을 베이킹 프로그램도 센터에서 다른 청년 분들과 함께 하니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때로는 베이킹 프로그램에서 만들어 온 것을 우리집 공간에 가져와 다른 청년 분들과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하는 재미를 조금씩 느껴 볼 수 있었다. 함께 하는 걸 좋아하지만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체험형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큰 설렘을 주었다. 강의 프로그램을 들으면서는 두더집에서 알게 되었던 분들도 마주치고, 대화는 나눠 본 적 없지만 몇 번의 강의를 같이 들으며 내적 친밀감이 쌓인 분들도 종종 있었다.
청년동행팀은 다른 팀과는 달리 권역 센터에 배정되어 지역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마 청년마중팀은 그렇게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상호작용을 하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일상 회복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권역을 배정하지 않은 것 같고, 청년이음팀은... 글쎄. 사회로 향해 더 나아가는 데에도 다른 청년들과의 상호작용보다는 개인화된 직업 훈련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걸까. 그리하여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둔 청년동행팀만이 권역 센터에 배정되었는데, 사실 그러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 같다. 올해는 그런 의견을 많이 받아 팀 구분을 없애겠다고 하였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 권역 센터라는 것은 지역별로 청년들이 모집되는 속도와 복지관 내부 사정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시기가 제각각이었다. 우리 권역에서는 내가 면담 첫 타자였는데 어떤 권역에서는 나의 첫 면담이 진행되기도 전에 참여 청년들 면담 한 바퀴 다 돌고 권역 OT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 권역은 초반에 인원이 너무 적어서 추가 명단이 오면 그 이후에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고 한 달 반 동안 면담 외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 권역에서는 권역 센터 프로그램과 중앙 프로그램을 둘 다 많이 참여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 두 명 빼고는 중앙에서 본 적 없는 것 같다.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권역 청년은 세 명 밖에 없다.
권역 프로그램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원데이 클래스나 강의 프로그램도 좋지만 좀 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센터에서 만나 프로그램을 함께 참여하고 사업이 끝나면 잊히는 관계가 아니라, 동네 친구에 가까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업이 끝난 후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유의미한 존재로 남아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초석이 되어주는 프로그램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듣자 하니 그런 모임을 종종 하는 권역도 있다고는 하더라. 대화 카드 같은 걸로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말이다. 이번에는 뭐가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권역 센터가 운영되면 건의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떤 프로그램이 나에게 가장 유익했냐고 묻는다면, 청년이음센터에서는 이전에 언급했던 클라이밍 동아리를, 청년기지개센터에서는 한강명산트레킹을 언급하고 싶다. 클라이밍 동아리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으니 생략하겠다. 강의형 프로그램도 괜찮긴 한데, 워낙 이것저것 잡지식을 얻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웬만한 강의는 식상한 내용이 많다고 느껴졌다. 원데이 클래스도 할 땐 재밌지만 끝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느낌이다. 체험형 프로그램은 그래도 성향적으로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흥미와 적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다른 것에 비해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프로그램들에 비해 매달 서울시체육회의 한강명산트레킹에 단체로 참여했던 게 나에게 긍정적으로 남았던 건, 그렇게 함께 거닐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상호작용할 수 있던 게 큰 것 같다.
사회적 고립 속에서 혼자 버티던, 혹은 버티지 못해 무너져 내렸다가 다시 일어나 보려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 그중에서 실제적으로 고립감 해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유익하기는 한데 이곳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법한 프로그램도 있고 말이다.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더라도 서로의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이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긴 하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단지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명산트레킹에서 한두 시간 거니는 시간은 일상의 잡다한 것들에서 떠나, 무언가를 하느라 집중하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연말에 진행된 동행팀 챌린지도 꽤 괜찮았다. 역시 일회성 프로그램보다는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더 좋은 것 같다. 별다른 상호작용 없이 화면 너머의 강사 님을 보고 따라 하는 것뿐이라는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프로그램 진행 도중 약간의 이슈가 발생했는데 강사 님이 거기에 대응해 주시지 않은 채 문제 상황이 몇 분씩이나 지속되기도 했다. 참여를 아예 안 하는 사람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다른 사람의 참여를 방해하는 사람이 매일같이 존재한다는 게 조금 답답한 부분이었다. 중간에 스트레스 반응이 세게 와서 채팅으로 양해를 구하고 참여를 포기한 회차도 있었다. 내 방이 강사 님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안 나온다는 것도 개인적인 아쉬움이었다. 홈트 챌린지 같은 건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집에 참여할 만한 공간이 안 나오거나 밖에 나오는 데 거부감이 낮은 사람들은 오프라인으로 모이고, 공간적인 여유가 되거나 밖에 나가기 힘든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정신적 여유가 안 되거나 괜히 거부감을 드러내며 불참했던 경우가 많았다면, 언제부터인가 선착순 경쟁에 밀려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 중 반은 그렇게 선정되지 못한 채 내 삶에 들어오지 못했다. 청년기지개센터 청년공간인 우리집 공간이 오픈한 게 9월인데 내가 그곳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처음 선정된 게 1월의 요가명상 프로그램이었으니. 센터 밖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종종 있었으니 그동안 아예 못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프로그램이 문득 기억을 스쳐가곤 한다. 노쇼 인원과 대충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프로그램이 특히 그렇다. 참여하러 와놓고 참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 거기까지 나오는 데 나름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 테니 그것만으로 큰 일을 해내신 것일 수도 있겠지만, 효용 측면에서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올해는 아마 상반기 동안은 기술교육원 다니면서 활동을 하느라 참여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프로그램이 많을 것이다. 관심 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공부하러 다니거나 일을 할 여력이 안 되는 누군가가 내 몫까지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몇 년의 시간 속에서 나는 그래도 공부하러 다닐 정도의 용기는 생겼으니 말이다. 서울시 기술교육원에 대해 알게 된 지 얼마 만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그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는 꽤 오래전에 서울시 뉴스레터에서 접하고 알게 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할 것도 없이, 그런 프로그램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녀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어딘가에서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