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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Apr 27. 2024

야나할머니와 나비이야기

각자에게 있는 나비의 의미

남편에겐 오랜 벗이 있다.

한 해에 같은 동네서 태어나 오십 년이 훌쩍 넘도록 벗인 두 사람의 색깔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다. 굳~이 찾아본다면 노년에 귀촌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의견 정도? 하지만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 부부와의 오랜 인연이 내게 더없이 특별하고 귀이유는 비록 닮아 보이진 않지만 볼트와 너트같이 든든한 지원자로 우리 부부의 모든 애, 경사에 함께였고 지금도 형제처럼 동행해 주시는 후원자시기 때문이다.


22년간 자영업을 하신 솜씨 좋으셨던 두 분은 상가 주변 재개발로 인해 몇 년 전 가게를 정리했고  그 간 즐기지 못했던 주말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직장인이  시간이 맞는 주말엔 우리 부부와 함께 산책과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나의 제안으로 각기 다른 작품집을 가지고 넷이서 필사를 시작했는데 좋은 문장이 있으면 공유도 해 고, 지금 내가 봤을 땐 소녀 감성 충만한 언니가 젤 열심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던 어느 주말.

언니네 부부와 공원 산책 중이었는데 그때 내 나비 한 마리가 보였고 나는 나비가 어떤 꽃에 마실을 가려나 나비의 날갯짓을 쫓고 있었다.


"어멋 나비네. 나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나빈데 얼른 소원 빌어야겠다."


나비를 본 언니는 소원을 비느라 걸음을 멈췄, 어제도 오늘도 보았기에 나비의 출연에 별 감흥이 없던 나도 언니의 순수한 감성에 미소 지으며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그 소원이 이뤄지길 바랐다.




나비를 보면 떠오르는 나의 아홉 살 초여름 이야기.

할아버지의 장례식 입관하던 날 저녁에 마루에 차려 놓은 제사상 앞으로 보라색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날아왔다. 어른들은 안방서 진행 중인 입관 예식에 혼이 빠져 정신이 없었고, 호기심 대왕이었던 나는 동분서주 바쁜 엄마의 눈을 피해 마루와 안방이 젤로 잘 보이는 마당에 자리를 고 그 모든 광경을 관람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타나 백열등 불빛 아래 팔랑거리는 나비 그림자가 유독 크게 보였다.


'어, 어, 저러다가 날개에 불붙음 우쨀라고'


상위에 가득 차려진 과일과 음식을 지키는 장승처럼 상 양쪽 옆에 우뚝 서 있는 흰 양초 사이를 왔다 갔다 날아다니는 나비가 불에 날아들어 퍼덕거리던 날개 잃은 나방처럼 될까 봐 움찔움찔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입관을 마치고 마루에 젤 먼저 나온 서울고모가 상 위에서 나풀거리는 나비를 보았다.


"이리들 좀 나와봐. 신기한 나비가 있어"


고모의 목소리를 들은 어른들이 안방서 하나 둘 마루로 나왔고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할머니도 나오셨다.


"느 아부지가 나비가 돼서 오신갑다"


할머니의 목소리에 마루 위에 있던 사람들과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나풀거리는 나비를 신기한 듯 보고 있는 그때 나비는 확 트인 마당으로 날아올라 지붕 위까지 오르더니 어두운 하늘 위로 모습을 감췄다. 할머니는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치셨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나는 할아버지가 나비가 되셨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나는 양이 애나와 함께 옆집 사랑방에서 격리 중이던 언니와 두 동생들이 이부자리를 펴고 누운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갔다.


" 변소 간 아니지? 또 어딜 갔나 오나?"


"언니야 나 할아버지 보고 왔다."


"병풍 뒤에 할아버지 꺼낸 거 봤나?"


"그것도 봤고 할아버지가 보라색 나비가 돼서 왔어"


"니 꿈꿨나?"


"아니 할머이도 사람들도 그래 말했다니깐"


"으휴,  보고 와서. 학교 가려면 얼른 잠이나 자"


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았, 보라색 나비를 직접 봤던 나는 속이 터져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삼우제도 지나고 모든 가족들이 우리 집을 떠나갈 때까지 보라색 나비 얘기는 내내 회자되었고, 그 뒤로 나는 학교 오가는 길이며 동네 구석구석에 만나는 나비들이 모두 누군가의 영혼이 깃든 존재라는 생각에 나비던 나방이던 날개를 가진 아이들은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행여나 명이 다한 나비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땅을 파고 묻어주었고 갈길이 바쁠 땐 돌멩이 무덤이라도 만들어 주었다. 한 번은 날아가는 쌀나방을 본능적으로 잡아 벽에 나방 도장을 찍어 놓고 아차 싶어 화들짝 놀랐을 때 나비의 영혼과 종교관이 부딪혀 매우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나비만 보면 떠오르는 그 밤의 생생한 기억.

과학적으로나 종교관으로 맞지 않는 얘긴걸 알지만 혹여나 그 보라색 나비가족이 동네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않을까? 더 집요하게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녀보아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며 할아버지도 잊혔고 보라색 나비 얘기도 자꾸 말하다간 과학소녀 언니로부터 나의 정신 상태를 의심받기에 충분했기에 나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산으로 들로 개울로 뛰어노느라 바빴던 나의 일상에 나비는 시들해지고 잊히는 이야기가 되었다.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나비가 꽃잎인지, 꽃잎이 나비인지 모를 광경을 눈에 담으며 누구에게나 나비가 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으로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누군가에게는 슬픔으로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의 나비


올봄 만난 처음 본 나비에게 소원을 담은 언니처럼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제각기의 나비가 삶과 인생에 위로가 되고 활력소가 되길 바라본다.


¿그런데 말입니다.(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여주었던 보라색 나비는 어디서 왔다가 그 밤에 사라진 건지 사실 지금까지도 궁금하긴 하다. 그냥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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