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아부지 강네이통을 왜 다 안 따고 끝에요맨치씩냄기노시? 어릴 적에도 봤던 기억이 있는데"
"니 왜 그런지 진짜 모르나?"
"아부지 나 진짜 몰라"
주렁주렁 강네이
"저 저 저것 좀 보래이. 저 마한노므 쥐시끼들이 강네이 다 뜯어 먹는다."
할머니의 숨 넘어가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처마밑 빨랫줄에 가지런히 달아놓은 옥수수 무더기에 시커먼 쥐 두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옥수수알을 훔치고 있었다.
나는 곁에 있던 지게작대기를 주워 들고 냅다 휘둘렀는데 뭔가 묵직한 것이 부딪히는 느낌과 함께 촤라락 하는 소리의 옥수수알들이 총알처럼 사방으로 날아갔고, 벽에 가서 부딪힌 시커먼 쥐 한 마리가 내 발 앞으로 날아와 쿵하고 떨어졌다.
"우쒸 깜짝이야"
꼭 쥐를 잡겠다는 생각을 할 새도없이 본능적으로 휘두른 지게 작대기였는데 뾰족한 노란 앞니를 드러내고 기절해 있는 쥐를 보게 된 나는 어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를 바라봤다.
"히힛 기운도 기운도 누굴 닮아 저리 억센지. 공중에 매달린 쥐시끼를 다 때리 잡고 지주도 용해. 가매보자쥐시끼가 까물친 거 같은디 내빼기 전에 붙들어 느야지"
할머니는 비료포대에 쥐를 밀어 넣고 끈으로 입구를 동동 동여매셨다.
"아빠 아빠 나 쥐 잡았어"
"네가 쥐를?"
"강네이 훔쳐 먹는 거 지게작대기로 때려잡았어"
"요새 여저 저지레를 음청하고 다녀 골치였는데 잘했네. 쥐가 다 물어 나르기 전에 고마 강네이 씨를 따야겠네"
아빠는 처마 밑 빨랫줄에 주렁주렁 걸어놓은 옥수수들을 차례차례 내려 고무다라에 담으셨고 우리는 들마루에 둘러앉았다.
"요 꼬채이로 한 줄 삐믄 빈 통 갖고 요래요래 문디고 요까지만 따고 끄트머린 요맨큼씩 냄겨논네이"
동생들과 나는 대야 밖으로 자꾸만 탈출하려는 옥수수 알을 온몸으로 막으려 점점 더 몸을 움츠리다 서로 머리가 쿵 쿵 부딪히자 키득 거리며 웃었고,소싸움에서 소들이 박치기를 하듯 일부러 머리를 부딪히니 할머니가 우릴보시곤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아서 강네이 따다 골 깨질라"
"근데 할머이 이거 뭐 할라고 따?"
"뭐 하긴밭에 심어 비가꼬 겨울에 소 여미기섶하지"
"아 엄마소 밥"
엄마소에게 양보한 실한 구역
"아부지 강네이 다 땄는데 언제 심으실라고?"
"오늘은 사람 잡을 더우니 낼 새벽에 일찍 심으야지"
"근데 아부지 요 끄트머리는 왜 예전이나 지금이나 요만큼을 냄겨 놓으신대?"
"실한 데는 씨하고 끄트머리는 겨울에 박상도 튀 묵고 뽂아 물도 끼리묵고 그라지"
"아 그런 깊은 뜻이. 나는일하다 만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걍 다 따버리면 안 돼. 뻥튀기는 사다 드시고"
"이게 사서 먹는 거랑 직접 튀서 먹는 맛이 다르 자네그리고 소가 좋은 거 먹어야지"
"아부지 거꾸로 자네. 소 말고 아부지가 좋은 거 드시"
엄마소 겨울 식량
첩첩산골 척박한 땅.
온갖 종류의 산새들과 산짐승들 속에 지켜낸 옥수수 밭은 임자를 잘 만나면 밭떼기로 팔려 속 끓이는 일이 덜했지만 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식구 모두가 일꾼이 되어 옥수수 알을 털었다. 그 옥수수 알은 풍채에 걸러지기도 하고 엄마와 할머니가 마당에 여러 날을 쪼그리고 앉아 키질로 먼지를 날려 가마니가 터지도록 꽉꽉 담아 놓으면 좀 더 싸게 가지고 가려는 장사꾼들의 흥정에 트럭에 싣고 갔고, 내 키보다도 더 높게 쌓여 있던 가마니가 사라져 휑해진 자리를 속 시원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 윗도리 주머니에 반 접혀 꽂히던 시퍼런 지폐들은 긴 긴 겨울을 나는 우리 가족의 생명줄이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더디고 더딘 봄을 기다렸다.
지금은 다 쪄 놓은 옥수수를 심심풀이 요깃거리로 먹고, 다 튀어 놓은 뻥튀기를 심심풀이 간식으로 사다 먹는데 아부지는 지금이나 예나 소에게 지극정성으로 옥수수섶을 먹이시는데 이젠 아부지가 소보다 더 좋은 것을 드시면 좋겠다.